얼마 전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개최한 세계경제 · 금융 컨퍼런스에서 한 패널리스트는 금융위기를 전쟁에 비유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종식되고 나서도 그 원인과 과정,그리고 전략의 적정성 등에 대한 분석은 계속돼야 하듯이 이번 글로벌 위기에 대한 논의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을 덮친 대지진처럼 느닷없이 전 세계를 덮쳤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큰 불은 잡힌 느낌이다. 사실 금융위기 직후에는 자본주의가 잘못되었느니 시스템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느니 하는 극단적 지적들도 있었고 금융산업을 매도하는 지적도 많이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은 좀 다르다. 자본주의 모델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 모델을 어떻게 잘 운영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헤지펀드 이슈를 보아도 그렇다. 위기 직후 헤지펀드는 글로벌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리고 많은 헤지펀드들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최근 모습을 보면 그사이 문을 닫은 것보다 더 많은 헤지펀드가 새로 생겼고 잘 운영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상위 10개의 헤지펀드가 벌어들인 수익은 280억달러로 골드만삭스나 씨티그룹이 포함된 세계 6대 대형은행의 수익 합계보다 20억달러가 더 많았다.

많은 헤지펀드들이 펀드를 설정하는 곳으로 유명한 조세피난처인 케이만 군도의 수도 조지타운은 헤지펀드 관계자들이 전 세계에서 계속 몰려들면서 성업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에 해외 유명 헤지펀드 9개사 정도가 진출하여 우리 증권사들과 제휴계약을 맺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사실 그 사이 우리 시장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자문형 랩이다. 일반 공모펀드 대신 자신의 계좌에 자금을 투입하고 계좌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받는 투자모형이 활발해진 것이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우리나라에 주목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변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헤지펀드 하면 투기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무법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신중한 투자스타일을 가진 헤지펀드도 많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고유한 투자모형을 개발해 자금을 운용한다.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대형음식점이라기보다는 몇 개 안되는 독특한 메뉴를 개발한 중소형 음식점에 가깝다. 이러다보니 헤지펀드에 대한 모태펀드 역할을 하는 회사도 있다. 이들은 어떤 헤지펀드가 유망한지 잘 분석한 후 고객이 맡긴 돈을 여러 헤지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헤지펀드의 자금 운용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즉 증권매매,증권대차,자금차입 등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면서 수익을 챙기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업무도 성업 중이다. 이처럼 헤지펀드업이 발전하면 펀드의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여러 가지 부수업무도 발전하고 수익원천도 다양해진다.

이와 같은 헤지펀드에 모인 돈은 나름대로의 합리적 판단을 토대로 고객들이 맡긴 자금이다. 헤지펀드를 무슨 별종처럼 취급하면서 말만 나오면 투기자본이라고 딱지 붙이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모델이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효율적 운용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금융당국이 제도개선을 통해 이런 펀드가 잘 육성 발전하도록 조치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가운 움직임이다. 도로를 반듯하게 닦되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 되는 것이지 속도 자체를 못 내게 도로를 구불구불하게 재설계하자는 식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위기 이후 주춤했던 우리 금융산업을 어떻게 육성 발전시켜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