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립할 때 일군의 식민지인들은 지금의 캐나다 땅으로 이주했다. 독립운동에 대한 반발이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새 나라,공화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룹이었다. 캐나다는 1951년 자치령에서 현재의 독립국가체제로 바뀐 이후 영국과의 법적 예속관계는 끝났다. 그러나 지금도 캐나다에선 왕국의 흔적이 적지 않다. 캐나다 제 1의 도시 토론토에서 나이애가라 폭포까지 이 나라에서 통행량이 제일 많은 고속도로 이름이 '퀸 엘리자베스 도로'(QEW)다. 돈도 그렇다. 캐나다달러에는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이 들어 있다. 형식적으로 아직도 캐나다의 국가원수는 영국 왕이라지만 주권 국가의 모습으로는 다소 생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왕국에서 공화국으로의 이행이다. 왕정을 유지하는 경우라도 입헌군주제가 큰 흐름이었다. 그렇게 보면 왕정보다는 공화정이 진일보한 체제라 해도 큰 무리는 없어보인다. 물론 사회구조나 정치체제에서 어느 쪽이 나은지 아직까지 입증된 바는 없다. 왕정은 왕정대로,공화국은 공화국대로 특징이 있다. 정치체제는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스웨덴,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모두 왕을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유지하고 있는 입헌군주국가다. 군주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구체적인 통치형태는 천양지차다.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모로코 스와질란드처럼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절대군주제 국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입헌군주제인지,절대군주제인지 경계가 모호한 곳도 적지 않다. 회교혁명 이후의 이란이 공화체제인지,신정(神政)체제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것과 비슷하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민주화의 불길이 몇몇 공화국을 거쳐 인근 왕국으로까지 넘실댄다. 이번 재스민혁명에서 눈여겨 볼 만한 포인트다. 왕정인 오만과 바레인만 해도 반정부 시위는 금기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국왕을 겨냥한 분노의 목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도 넘어간다. 공화국을 표방해온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어떤 이들은 주장한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중동 민주화 혁명을 발화시켰다는 것이다. 대졸 실업자로 과일행상을 했던 튀니지 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된 이번 물결이 현상적으로 경제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한 얘기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든,지난해의 유럽 재정위기든,미국의 돈풀기든,직접 원인을 무엇이라 하든 큰 상관은 없다. 경제 문제가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생활',대중의 일상사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면서 세상은 바뀐다. 과거처럼 이웃 나라가 남도 아닌 시대다. 이 점도 주목해 볼 포인트다.

이번 재스민 혁명에서 또 한 가지 엄연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화국이 공화체제를 갖지 못한 곳은 폭발한다는 점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무바라크의 이집트가 그러했다. 카다피의 리비아도 그렇다. 종신형 독재도 모자라 권력을 세습하려 한 국가들이다. 겉으로는 공화제이면서 실은 절대군주 같은 권력이 횡행한 나라들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이제 절대권력은 절대로 무너진다는 새 진리가 확인된다. 이 순간 한반도 북쪽을 한번 더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처럼,198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처럼 인류사의 한 장을 넘기는 거대한 흐름을 우리는 매일 생중계로 지켜본다. 이 물결이 어디까지 갈까.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