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문학 경시하다…800년 齊나라 무너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은 인간의 꿈이다. 부와 권력을 갖게 되면 불사(不死)의 꿈은 더욱 커진다. 진시황이 그랬다. 천하를 통일한 그는 신비의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신선의 술법을 닦았다는 방사(方士)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방사와 술사는 주로 제(齊)나라에서 왔다. 산둥(山東)반도 일대에 있던 제나라의 웅장한 산세와 지세는 도교의 기반이 됐고,기인들이 넘쳐났다. 분서갱유 이후 동쪽으로 순행하던 진시황에게 불사의 약을 구해오겠다며 3000명의 동남동녀와 온갖 장인들을 태우고 바다로 나간 서불(徐市) 또한 제나라 방사였다.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의 저자인 장웨이 산둥사범대 교수는 제나라 방사들의 잇단 진나라 행(行)이 분서갱유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진시황이 방사들에게 속은 뒤 격노해 분서갱유가 일어났고 이를 통해 사상 통제와 전제적 통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마을] 인문학 경시하다…800년 齊나라 무너지다

이보다 더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문화적 대충돌이다. 바다에 가까웠던 제나라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고,사람들의 기질도 호방하고 활달했다. 또한 개방적이고 풍요로웠다. 이에 비해 내륙의 진나라는 자로 잰 듯 엄숙하고 단정했으며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나라였다.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자유로웠던 제나라 사람들은 군사적으로는 강하지만 문화 수준이 낮은 진나라 사람들을 얕보기 십상이었고,해안문명과 내륙문명의 분서갱유의 문화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분서갱유의 큰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지만 이 같은 문화적 요인도 직시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춘추전국시대 고대국가 중 하나로 825년가량 번영했던 제는 어떤 나라였을까. 지금의 산둥성 광라오(廣饒)현 남쪽에 있던 도성 임치(臨淄)는 당나라 장안만한 대도시였고,수많은 거상들과 가장 긴 상가,가장 큰 축구장,우아하고 매력적인 소악(韶樂) 연주와 절세 미녀들이 즐비했다.

진시황이 가장 총애했던 제비(齊妃) 역시 제나라 여인이었고,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부소였다. 제나라는 또한 전국시대 최고의 인문학 연구소라 할 '직하학궁'을 150년 이상 운영했다.

제의 문화는 한반도와 유사했다. 제나라가 병합했던 내(萊)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해안문명이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또한 온돌방 바닥에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서 밥을 먹었다. 또 도교의 영향으로 평온을 통해 에너지를 모으고,역량을 지키는 전통은 선불교와 융합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완벽하게 접목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옛 사람들의 다도,바둑,거문고 연주는 평온을 위한 명상의 수단이었다는 얘기다.

융성했던 진나라와 제나라는 불과 15년 차이로 무너졌다. 둘 다 "내가 당대 최고 · 최강"이라고 오만했던 결과였다. 제나라의 경우 물질적 풍요에 파묻혀 직하학궁을 주변으로 밀어낸 결과 망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2200여년이 지난 지금 진나라의 흔적은 유적 · 유물로만 남아 있는 반면 제나라의 유산은 문화 속에 살아 있다.

저자는 "사상과 문화의 축적이야말로 물질의 축적을 마지막까지 확실히 보증해줄 수 있다"며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충분한 인내심과 끈기가 없다면 사상과 문화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없고,인류를 기다리는 건 더 큰 재난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역사와 사상,문화 등 제나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저자의 솜씨가 탁월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