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해 놓고 이를 차일피일 미루는 기업들이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 효과 등을 공언해 놓고 정작 실행에 옮기지 않아 이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일정은 의사회 결의만 있으면 기업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허점이 이 같은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와이어리스는 지난해 12월 15일 51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한 뒤 증자 일정을 두 달간 다섯 차례나 연기했다. 이번 유상증자로 발행되는 신주는 1000만주로 증자 전 발행주식총수(1461만6628주)의 3분의2에 해당한다.

이 유상증자에는 안라쿠 히토시 씨 외 일본인 투자가 4명(총 25억5000만원)과 금중필 한와이어리스 부회장, 정규빈 한와이어리스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유상증자를 호재로 발표 당일 주가는 장중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금 유입은 회사 측의 일정 변경에 슬금슬금 미뤄지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12월 29일에 자금이 납입됐겠지만 일정이 다섯 차례 수정되면서 납입예정일은 오는 11일로 늦춰졌다.

한와이어리스 측은 "해외 투자자와 거래를 하다보니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는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절차가 문제가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와이어리스가 유증에 성공할지도 미지수다. 유증 공시일 당시 700원을 웃돌았던 주가가 현재 200원대로 급락했다. 신주발행가액은 현재 주가보다 배로 높은 510원이다.

한와이어리스가 거액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한 뒤 일정을 미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와이어리스는 지난해 5월31일에 결의한 2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일정을 7차례 변경한 뒤 지난해 9월 결국 철회했다. 유증 대상자는 황규화 당시 한와이어리스 대표이사, 강양희 부사장 등 14인이었다.

티엘씨레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티엘씨레저는 지난해 4월 결의한 288억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 발행을 1년 가까이 진행하지 않고 있다. 티엘씨레저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이사회 의사록에서 결산업무 진행, 이사직무직행정기가처분 결정 등을 이유로 들며 유상증자에 관련된 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참가 주체를 정하고 이뤄지는 만큼 투자 자금 유치에 대한 기대가 강해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는 반면, 이를 연기할 때 제재할 방안이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이 이사회에서 유상증자 일정을 늦추겠다고 결정하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일정 연기나 대한 특별한 제재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기업은 기한과 횟수와 관계없이 유상증자를 미룰 수 있다는 것.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티엘씨레저는 기업 경영권 분쟁으로 유상증자가 미뤄지고 있는 특이한 사례"라면서도 "장기간 연기해도 제재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상증자를 철회할 경우 한국거래소로부터 강한 제재를 받게 되는데 비해 일정 변경은 자유로워 철회보다 연기를 선택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 inj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