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어울려 라운드를 하던 중 모처럼 티샷이 잘 맞았다. 공교롭게도 친구들 공은 좌우로 날아갔거나 토핑이 됐다. 기대를 하고 가보니 공이 디보트 자국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친구들은 자기 공 위치를 확인하고 그린까지 거리를 재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상황이면 대개 공을 슬쩍 옆으로 옮겨 놓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실제로 미국 골프매거진과 골프재단이 평균 핸디캡 15,구력 23년의 아마추어 64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2%가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게 볼을 옮겨놓는 라이 개선(64%)이었고 스코어 1~2타 줄여 적기(40%),OB인데도 아닌 것처럼 플레이하기(36%),벙커 연습스윙에서 모래 건드리고 모른 체하기(7%) 등의 순이었다. 프로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2006년 전국체전 골프 마지막 라운드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가 티샷 OB를 낸 후 '알까기'를 했다가 들통난 적이 있다. 그린 위의 공을 홀에 가까워지도록 밀면서 마크하는 행위도 선수들이 자주 하는 위반이란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재임시 핸디캡 12라고 주장했으나 주변에선 믿지 않았다. 벌타 없이 샷을 한 번 더하는 '멀리건'을 받기 일쑤였고 퍼팅한 공이 홀에서 꽤 떨어졌어도 집어들곤 했기 때문이다. 함께 라운딩했던 프로골퍼는 핸디캡만큼 멀리건을 줬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홀에서 34타의 성적을 냈다고 보도된 적이 있으나 이 역시 규칙을 무시했던 게 틀림없다.

미국 전 · 현직 CEO들이 기존 규칙을 대폭 완화한 '대안 골프'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골프 스트레스를 몰아내자는 취지에서다. 기본 규칙은 이렇다. 매홀 멀리건을 한 개씩 받는다. 공을 1.8m 이내에서 옮길 수 있다. 스리 퍼트 이상은 없다. OB가 나도 1벌타만 받고 공이 날아간 부근 러프에 놓고 친다. 페어웨이에서 티를 꽂고 샷을 해도 된다. 핸디캡 3의 고수인 스콧 맥닐리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창업자,존 도나호 이베이 CEO 등 쟁쟁한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단다.

너무 싱거워 무슨 재미로 치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골퍼도 많을 게다. 하지만 여유 있게 풍광을 즐기며 담소하는 데 무게를 둔다면 가끔 해볼 만도 하겠다. 속임수 쓰지 않았냐며 티격태격하다가 개운치 않게 헤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