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사진)이 코너에 몰렸다. 국정원 직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침입 사건으로 여권에서도 인책론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6월 리비아 파견 국정원 직원의 해외추방 사건 등 몇 가지 실책이 쌓여온 터다. 특히 국가의 중요한 기밀 정보가 언론에 여과 없이 새면서 조직장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내 · 외부 권력 투쟁설까지 겹쳤다. 원 원장이 사의를 표했다는 설이 나돌지만 그럴 타이밍이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레임덕 경보

이번 사건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진 청와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연루 자체도 문제지만 정보 유출은 이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비화될 수 있다. 지난달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이 반기를 들었고 최근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등 측근들이 비리 의혹에 얽히면서 '레임덕 경보'가 울린 상황이다. 청와대 내에선 원세훈 체제론 더 이상 정상적 국정원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기류도 있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특사단 침입 사건을 시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원 원장을 당장 교체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속에 청와대는 여론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여당도 냉가슴을 앓고 있다. 4월 재 · 보선을 코 앞에 두고 구제역에 물가,전세대란,저축은행 부실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형국에 국정원 개입 의혹까지 '선거 악재'가 줄줄이 겹쳤다. 친이계 한 의원은 "언론에서 이런 정보를 받았다는 것은 정부 내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쉽지 않은 것"이라며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국정원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리비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 데 이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원 원장이 이번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었다"며 "'타이밍'이 문제이지 그가 어떤식으로든 책임을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부소행? 권력투쟁?

정보 유출 배경엔 국정원 내부 및 외부의 권력 암투설이 자리하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원 내 '반 원세훈'파들이 원 원장을 쫓아내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동안 쌓여 온 인사 등에 대한 잠재적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 원장은 2009년 3월과 지난해 6월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해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두 번에 걸쳐 1급 이상 고위직이 대거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여권의 특정 실세라인이 이번에 반격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원 원장이 이상득 의원과 친한 직원들을 밀어내면서 쌓인 갈등이 이번 사건을 초래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