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동결 놓고 딴 목소리까지 나와

3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화 시위 과정과 호스니 무바라크의 전격 퇴진 이후 등 이집트 사태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외교적 대응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15일 브뤼셀에서 열린 EU 재무장관회의(경제ㆍ재무이사회.ECOFIN)는 이러한 난맥상의 '절정'이었다.

지난 11일 무바라크가 전격 퇴진하자마자 스위스 정부는 자국 내 무바라크 개인 자산을 동결했고 브뤼셀 외교가에서는 EU도 14일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재무장관회의, 15일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와 프랑스, 독일 등 개별 회원국은 "이집트 당국으로부터 무바라크 정권 고위 인사들이 EU 역내에 은닉한 자산을 동결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협의 중"이라는 설명만 되풀이했다.

또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자산동결 문제가 논의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참석자들의 말이 엇갈리기까지 했다.

EU 이사회 순번의장국 대표로 재무장관회의를 주재한 머톨치 죄르지 헝가리 경제장관은 "이집트 정권 고위 인사의 자산 동결은 (오늘) 논의된 아이템이 아니다. 이 문제는 외무장관회의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무바라크 정권 핵심 인사들의 자산 동결을 "논의했다. 독일을 포함해 몇몇 EU 회원국에 이집트 당국으로부터 요청이 있었고 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곧 결정될 것"이라고 상반된 발언을 했다.

머톨치와 쇼이블레의 발언을 종합하면 재무장관회의의 '공식' 의제로 상정되지는 않았으나 현안으로 논의된 것으로 해석되며 그렇더라도 무바라크 개인과 그 일가를 겨냥하지는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위스가 발 빠르게 치고 나간 것과는 무관하게 EU는 국제사회의 대응, 특히 미국의 행보에 보조를 맞추려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비단 무바라크 및 측근 인사들에 대한 자산 동결에 그치지 않고 EU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 초기부터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였을 뿐 공동체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정치ㆍ외교적 수사만 거듭했을 뿐 효과적으로 외교력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 외무장관 출신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는 최근 한 네덜란드 TV에 출연해 이러한 난맥상을 비판한 바 있다.

데 후프 스헤페르는 이집트 정세 변화와 관련해 "유럽의 입장은 일관되지 못했다. 독일, 프랑스 등 대국들이 자기들 나름의 입장을 취하면서 공동체 외교 정책은 뒷전으로 밀쳐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브뤼셀연합뉴스) 김영묵 특파원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