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놓고 청와대와 민주당의 막판 기싸움이 여전하다.

청와대는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14일 국회 등원 약속 이행이 돼야 영수회담을 곧바로 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영수회담과 등원은 별개"라면서도 회담 후 등원하는 게 순리라고 맞서고 있다.

손 대표 측은 영수회담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는 데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졸라대는 모양새가 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참모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줄 마땅한 카드도 없는 것 같은데 아예 영수회담을 접고 '날치기 방지'를 담은 필리버스터법안을 이달 처리하는 조건으로 등원하는 통큰 정치를 보여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현안은 여야가 풀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면 밀실 정치 이미지도 풍길 수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우려"라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로선 대통령이 공개 언급한 영수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고,민주당도 국회 등원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처지여서 내주 중 영수회담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양측이 회담을 두고 밀고 당기기 하는 바탕엔 회담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끝이 안 좋았던 과거 영수회담의 추억도 한몫하고 있다. 2008년 5월 이 대통령과 손 대표(당시 통합민주당 대표)가 만났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한 · 미자유무역협정( FTA) 비준안 처리 등을 놓고 이견만 확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9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단독회담을 갖고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당내 역풍을 맞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일곱 차례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7번 만났으나 7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에서 칠회칠배(七會七背)란 신조어가 한나라당 주변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1975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신민당 총재 간 회담은 성공적으로 비쳤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은 창 밖의 새를 가리키며 "처가 없으니 이 큰 집이 절간같이 느껴집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다 "날 믿으시오,민주주의를 꼭 할 겁니다"라고 말해 YS의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렇지만 YS는 이후 "인정마저 악용해 사람을 농락했다"고 맹비난하면서 극한 대결로 치달았다.

홍영식/김형호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