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사 3년 차인 김동호씨(30).직장 내에서 한창 일만 할 나이인 것 같지만 사실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는 고령화와 노후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에 퇴직한 아버지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은퇴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의 부친은 공기업 임원 출신이다.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임원까지 했으니 매우 성공적인 직장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꾸준히 저축도 해 풍족하진 않지만 노후생활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자금도 마련했다. 그러나 퇴직을 얼마 앞둔 시점에 문제가 발생했다. 주식투자로 인한 손실로 그동안 마련한 저축의 3분의 2 이상을 날려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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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버지가 평소에 주식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투자는 다소 갑작스럽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투자였다. 왜 그렇게 무모한 투자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가족들의 물음에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다름 아닌 '조급함'이었다. 곧 퇴직인데 별다르게 수입을 창출할 일은 없고,언제까지 살지도 알 수 없고,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아버지의 잘못된 투자를 야기한 조급증이 바로 준비되지 않은 은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부터 자신의 은퇴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점검해보기로 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절반 이상은 100세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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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 30대들은 언제쯤 은퇴를 하게 될까?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기준으로 하면 1969년 이후 출생자들의 연금수령 연령인 만 65세를 은퇴 예상시점으로 잡아보자.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30세 남녀의 기대여명은 각각 47.5년과 54.1년이다. 즉 남자는 77.5세이고 여자는 84.1세이다. 하지만 10년 전 조사 때보다 평균 기대여명이 5.3년 증가한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해당 연령별 기대여명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30세인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100세 가까이 수명을 가정해도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씨는 35년의 은퇴생활을 위해 35년간 준비해야 한다. 그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을 하는 것을 가정했기 때문에 연금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65세부터 현재 가치로 매월 100만원의 은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씨의 계획에 맞추려면 물가상승률 4%,세후 투자수익률을 5%로 가정했을 때 65세까지 약 14억원이 필요하다. 이 돈을 일시금으로 마련하려면 세후 투자수익률을 8%로 가정했을 때 매달 68만원씩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투자기간을 늦출수록 정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금액은 늘어난다. 월급이 조금 더 오른 뒤에 투자해야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월급 인상은 대체로 근무 기간에 비례하는데 그 만큼 나이가 드는 것이고 가정에서도 돈이 들어갈 일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투자를 미루었을 때 1년 단위로 투자해야 할 금액이 늘어나는 추세는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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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서 보는 것처럼 매월 정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금액이 증가할 뿐 아니라 원하는 자금을 마련하는데 투자해야 할 총 투자금액도 늘어난다. 30세에 투자하면 14억원을 마련하는데 연 8%의 수익률을 가정할 때 총 투자되는 금액이 2억8000만원이면 되지만 10년만 늦춰져도 매월 투자해야 할 금액이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총 투자해야 할 금액도 4억8000만원으로 늘어난다. 그만큼 투자에서 시간의 힘은 강력하다. 하루라도 빨리 시간의 힘에 올라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 20, 30대의 특권이기도 하다.

◆여가에 지나친 소비 지출은 삼가해야

그래도 은퇴 준비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소비행태를 분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수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 소모성 소비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여가생활에 대한 과도한 지출은 재산 형성의 장애 요인이다. 명품이나 자동차는 소모성 지출의 대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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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시절은 저축보다 여가를 즐기는 데 더 신경을 쓰기 쉽다. 하지만 일생에서 가장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시기는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자녀들이 취학하기 전까지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소비를 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젊었을 때 능력을 키우기 위한 1시간 소비는 미래를 위한 커다란 재산이자 좋은 투자 방법이다.

김씨는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데 뿐만 아니라 필요한 능력을 만드는 데도 시간의 힘을 믿기로 했다. 지금부터 10년 단위로 하나씩 재능을 만들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루에 3시간씩,매년 360일을 투자하면 10년이면 1만800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다. 결국 이렇게 투자된 1만시간이 향후 30만시간이 넘는 은퇴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다.

◆단기 · 중기 · 장기 자금 비율 6 대 2 대 2로

20, 30대의 재무설계는 마치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지금 스케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20, 30대에 필요한 자금은 삶의 주요 이벤트에 따라 결혼준비 자금과 주거마련 자금,은퇴자금으로 나눌 수 있다. 자녀 교육자금도 준비해야 한다. 결혼준비 자금이나 주거마련 자금은 비교적 단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자금이고 자녀 교육자금이나 은퇴자금은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자금이다.

이들 자금을 준비할 때 유의할 점은 처음부터 해당 목적에 맞는 통장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목적자금 별로 통장을 나눠 투자하고 주어진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해당 이벤트를 해결해야 한다. 20대는 단기 · 중기 · 장기 자금 비율을 7 대 2 대 1의 비율로 유지해야 하는 게 좋다. 30대는 6 대 2 대 2의 비율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10%나 20%로 준비한 돈이 어느새 종잣돈이 돼 위력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다. 이에 따라 김씨는 결혼준비에 저축 가능 금액의 60%를,주택마련을 위한 저축에 20%,노후준비에 20%를 각각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연금보험상품에 꼭 가입해야

장기투자는 투자의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해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은퇴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20,30대는 주식편입 비율이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준비된 목돈이 없는 시기이므로 적립식 투자가 적당하다.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투자기간의 분산을 통한 위험 축소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은퇴 준비에 적당한 적립식 투자 상품으로는 성장형 주식펀드나 변액유니버설보험 혹은 변액연금보험 등이 있다. 만약 하나의 상품에만 투자한다면 변액연금보험에 가장 먼저 가입할 것을 권한다. 변액연금보험은 투자형 상품으로 수익성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종신연금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식편입 비율이 50%인 변액연금보험과 100% 주식형 성장형 펀드에 동시 가입했다. 향후 두 상품의 활용 방안은 주식형 성장형 펀드를 통해 얻은 수익금액을 변액연금보험의 납기가 끝나기 전에 추가납입해 종신토록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을 늘리는 전략을 취할 작정이다.

최문희 FP협회 전문위원 flpce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