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희생하고라도 중동의 평화를 유지해야 할지,아니면 이집트 다수 국민들의 민심을 좇아 무바라크 대통령을 즉각 물러나게 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고민이 큰 데는 중동 질서 유지에 중추적 역할을 해 온 친미 정권을 잃기 싫은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무바라크 퇴진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다고 민주 정부가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건 아니다. 자칫 1979년 '샤 왕가' 몰락 이후의 이란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급진 반미 정부가 들어서면 그동안 어렵게 꿰맞춰 온 중동의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30년의 독재 정치탓에 야당과 시민단체가 활성화되지 못해 미국이 말하는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이집트 국민은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에 분노한다. 국민들은 무바라크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받아들인다. 최루탄 탄피에 있는 '메이드 인 USA'를 보면서 미국의 지원 없이는 무바라크의 독재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한 해 15억달러의 군사비를 지원하면서 이집트와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집트인들은 1989년 동유럽 국가들처럼 자신들의 시민혁명이 민주화로 이어질 것으로 자신한다. 이집트 집회는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20대의 인터넷 세대가 주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전 세대가 동참하는 식으로 확산됐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영향이 컸지만 30년 억압과 독재에 이어 무바라크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가 대권을 넘겨받게 될 것이란 얘기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모멸감을 느낀 국민들이 희생당해 온 자신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은 "미국은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이집트) 국민들 편에 서야 한다"며 미국의 바른 선택을 촉구했다. 국가의 안위를 이유로 다른 나라 국민들의 인권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에 미국이 이집트 국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원 방식을 바꿨어야 했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패권국가인 미국이 더이상 이해득실만 따져 힘의 논리로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맞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가치를 더 많은 국가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관계 개선에 힘쓰는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가치를 공유하면 그게 바로 우방국가이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6일(현지 시간)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주요 방송들이 그의 탄생 기념행사를 일제히 생중계한 것은 위대한 소통자로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판단해서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가치에 충실한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가치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고 혁신과 기술에 자원이 할당되는 경제정책을 의미한다.

미국의 가치가 이집트에서도 힘을 발휘해 국민들의 삶의 질이 증진될 수 있다면 미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당장의 이해에 집착해 이집트의 정권 이양을 좌지우지하기보다는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옆에서 도와야 한다. 이집트 사태는 '빅 도그(권력자)'로서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미국이 가치 공유의 조정자로 위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익원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