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전을 면치 못했던 LG전자는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부임하면서 연초부터 '독하게 일하는 문화'를 복원시키겠다며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어떤 것이 됐든 조직 문화는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으로,조직을 전체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가는 경영관리의 인프라 같은 것이다. 독하게 일하는 문화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처럼,의도적으로 어떤 조직문화로 변화한다는 것은 경영 여건 속에서 그 조직에 최적의 조직문화를 개념적으로 구체화시켜 공유하고,이를 통해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이 그런 방향에서 표출되도록 관리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제4의 경영자원'으로 일컬어지는 '최적의 조직문화' 구축을 위한 실전적인 방법론을 짚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실무팀장이 된 사람은 대체로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 조직문화의 구현을 위해 최소한으로 다뤄져야 하는 영역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합의되고 공식화된 틀이 없기 때문이다.

GWP 조직문화를 포함해 모든 조직문화의 변화관리가 다뤄야 하는 영역은 △추진체계 △진단 평가 △의식 변화 △행동 변화 △커뮤니케이션 △제도 보완 등 6개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컨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복원하고자 한다고 생각해 보자.이때 추진체계란 '왜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의 논리를 개발한다거나,어떤 사람들이 어떤 구도 속에서 그런 문화 복원을 주도할 것인가 등을 확정하는 것이다. 진단 평가의 영역에서는 구성원들이 현재 어른 공경이란 가치와 관련해 어떤 인식 수준을 보이고 있고,왜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를 파악해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량(定量)적인 측정이나 정성(定性)적인 진단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의식 변화의 영역에서는 간단하게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실행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행동 변화의 영역은 어른을 보면 허리를 숙여 인사해야 한다는 식의 일반적 행동 지침들을 정비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우수한 실행 사례의 전파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의 활동으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다뤄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도 보완의 영역은 경로 우대권,노인 지정 좌석제와 같은 형태로 어른 공경의 가치를 구체적 제도로 개발하는 것이다.

조직문화의 변화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추진 프레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GWP 조직문화를 이루고자 하는 미래 모습(to be)으로 설정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의,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기본적인 과제다. 그러나 컨설팅 경험상 변화관리 활동 전반이 어떤 방향(direction)속에서 설계돼야 하는가를 추진 프레임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조직은 발견하기 어렵다. 앞선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필자는 GWP 조직문화의 구현을 위해서는 권력거리와 맥락거리를 축소시켜 나간다는 방향성을 조직 구성원 전반이 공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권력거리가 축소되지 않고는 상하 간의 근본적인 신뢰 수준을 높여 나갈 수 없다. 맥락거리의 축소는 지금까지 조직문화가 형성돼 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관행적 차원들을 재구축함으로써 조직 구성원이 문화적 맥락을 공유한 뒤에야 달성될 수 있다.

[도표]의 추진 프레임상에서 접근이란 예컨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실제로 조직 내부의 권력거리가 축소되도록 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한 번의 어떤 조치를 통해 바로 권력거리가 낮아지는 만병통치약 같은 조치는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 · 장기적으로 조직문화 변화를 관리하는 동안 조직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관찰과 피드백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내재화시켜야 한다. 관찰을 하는 것은 행동이다. GWP 조직문화가 됐든,독한 문화의 복원이 됐든,궁극적으로 그것의 달성은 조직 구성원들이 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독하게 실행하는 행동을 으레껏 보여주는 정도가 됐을 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이 관찰돼야 하는 것은 그럴 때 피드백이 효과적일 수 있고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맥락도가 높은 문화일수록 후배 직원을 두고 '너는 버릇이 없는 것 같다'는 식의 피드백을 하는 경향성이 높은데,이런 피드백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변화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개입돼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서로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단정적인 지적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피드백은 '너는 왜 출퇴근을 하면서 또렷하게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해 주는 것이며,이런 피드백은 행동에 대한 관찰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만 여건에 따라 관찰이라는 것을 광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있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관찰이지만,현실적으로 관찰의 대상자가 수만명도 될 수 있기 때문에 계량화된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계량적 도구를 활용,관찰의 결과를 지수화시켰다고 하더라도 피드백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그 점수가 담고 있는 행동들이라는 생각을 명확히 가져야 한다.

추진도상에서의 활동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실행하고 있는 조직문화 활동을 의미한다. 조직의 실무자들로부터 '이번에는 어떤 활동이나 교육을 기획해서 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고민 속에서 국내외의 다른 기업은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궁금해 하고,그것이 좋아 보인다고 따라하는 단순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어떤 활동을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 판단 기준으로서 추진도상의 방향과 접근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나타나곤 한다.

또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조직 내부의 '문화 경계선'을 명확히 그려놓고 있어야 한다. 문화 경계선은 조직문화적인 여러 현상이나 해결 이슈들이 표출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은 일정 규모를 넘어서게 되면 하부 조직이나 업무 성격 혹은 계층에 따라 문화적 경향성을 달리 할 수밖에 없는 조각(segmentation)으로 나눠질 수 있다.

필자는 실제로 여러 대기업에 대한 조직 문화 진단을 통해 내부의 문화 경계선을 그려본 적이 있다.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일반적으로 업무 성격과 계층,직군에 따라 조직은 문화적으로 나눠지고 나눠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일반 사무직,현장 생산직,연구 계약직 등이 있는 조직은 대체로 그 경계선에서 조직 문화 차원의 다양한 갈등이 분출된다. 일반 사무직은 노조의 우산 아래서 안주하는 현장 생산직을 보며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너무 떨어진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반대로 생산직은 사무직 직원들을 보면서 자신들을 통제하는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직의 고용 불안이 가중되면서 정년이 보장되는 생산직을 오히려 부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향도 공통적으로 비춰진다.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지만 문화적 경향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장에서 창의를 얘기하기 어렵고,연구자들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아무리 창의성이 강조되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공장에서는 관리와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안전이란 가치보다 강조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장 수준의 관리와 통제를 통해 창의와 자율이 존중돼야 하는 연구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는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실전적인 조직문화의 변화관리를 위해서는 점수 혹은 활동의 관리가 아니라 언어와 행동의 관리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점수를 관리한다는 것은 조직문화적인 현상들을 지수화시켜 관리한다는 것인데,그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기업에서 절감하고 있는 것이어서 부연할 필요도 없다. 점수에 집착하면 할수록 점수는 높아지지만 조직문화는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 경험칙이다. 또 활동의 관리란 예컨대 펀(fun)경영 활동 같은 이벤트의 실행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그런 활동을 통해 조직문화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길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조직문화의 변화관리는 오히려 언어와 행동에 대한 관리다. 언어는 곧 사고의 프레임이다. 문화인류학적인 연구에서 보면,예컨대 독한 문화를 구현한 조직에서는 '나보다도 독종이네''이런 게 독한 거야''독종들만 들어가는 공간' 등과 같이 독하다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혹은 다른 문화를 보이는 조직보다 훨씬 자주 조직적으로 사용되고 구성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단이 필요하다면 대충 개발된 커뮤니케이션 지수 조사 같은 것을 할 게 아니라,구성원들이 어떤 언어 행동을 보이는가를 진단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글쎄''안된다''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되지''왜 안 돼''어떻게 하면 더 잘 되지'라는 언어 표현을 사용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곧 언어와 행동의 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