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김모씨(65)는 2008년 초 가입했던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펀드를 최근 환매했다. 당시 가입 금액은 5억원.그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펀드는 금세 반토막이 났다. 울화통이 터졌지만 손실 금액이 워낙 커 환매할 엄두가 안났다. 다행히 2009년부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드디어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수익률이 10%를 웃돌자 김씨는 미련 없이 환매를 결정했다. 환매한 돈은 전액 국내 주식형 펀드로 갈아탔다. 김씨는 "지난 3년 동안 펀드에 돈이 묶여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어쨌든 손해를 보지 않고 팔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남 부자들이 이머징 마켓에서 탈출하고 있다. 대부분 2007~2008년 가입했다가 펀드 가치가 절반 이하로 주저앉는 것을 경험했던 이들이다.

김영훈 하나은행 압구정 골드클럽 PB팀장은 "2007~2008년 브릭스 펀드 열풍이 불 당시만 해도 투자자산의 60% 이상을 해외 펀드에 넣는 부자들이 많았다"며 "자신들이 가입한 펀드가 반토막 나는 걸 본 이들은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서자 곧바로 환매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또 "같은 브릭스 국가라도 브라질이나 인도가 아닌 러시아나 중국 투자 비중이 높은 펀드의 경우 여전히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부자들은 대체로 손실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아직까지 환매하지 않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정성진 국민은행 청담PB센터 팀장도 "주로 중국 쪽 펀드가 워낙 골이 깊었기 때문에 그만큼 수익률 회복도 더디다"며 "반면 인도나 브라질의 경우 금융위기 전에 투자했더라도 10% 이상 고수익이 난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브릭스 등 신흥국으로 쏠렸던 글로벌 자금이 해당 시장을 이탈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신흥국 정부들이 금리 인상,자본 유출입 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작년 하반기부터 잇따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 펀드 환매 움직임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최근 몇 개월 새 국내 주식시장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만큼 해외 펀드를 해지하고 대신 국내 펀드에 가입하는 사례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지난해 이머징 마켓으로 돈이 몰렸던 이유는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로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신흥국마다 금리 인상,자본 유출입 규제 강화 등을 시행하면서 각 나라 또는 섹터별로 순환적인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또 "앞으로도 이 같은 조정 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일단 이익이 났다면 일부 환매해 이익을 실현하는 것도 좋은 투자방법"이라며 "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브릭스 시장이 여전히 유망하므로 분할 매수하거나 전체 투자자산 중 20% 정도의 비중을 계속 가져가는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낮추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성진 팀장은 "일단 목표 수익률을 좀 낮추고 목표에 도달할 경우 바로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아울러 신흥국보다 미국 S&P 인덱스 펀드와 같은 선진국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좀 더 높이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김영훈 팀장은 "요즘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주식보다는 하이일드 채권형 펀드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연 8%의 수익률로 매달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