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 청문회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 실종의 결과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줬다. 두 장관은 각각 지난 17일과 1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쳤다. 정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는 지난 19일 채택됐으나 최 장관은 민주당의 반대로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최 장관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시한(24일)이 넘어가자 25일 경과보고서를 재송부해 달라는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으며 재송부가 이뤄지지 않자 임명권을 행사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청문요청서가 국회에 도착한 지 20일 안에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해 청와대에 넘기지 않을 경우,그로부터 10일 안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최 장관은 현 정부 들어 인사 청문회를 거치지 않았거나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9번째 인사가 됐다.

이 대통령은 2009년 9월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이귀남 법무부,임태희 노동부,백희영 여성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바 있다. 앞서 2008년 8월엔 18대 국회 원구성 협상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심화되면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안병만 교육부,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전재희 복지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현 정권 출범 초기인 2008년 3월 김성호 국정원장은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여야가 일정에 합의하지 못해 청문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청문회가 열렸으나 야당이 부적격이라고 반발해 청문경과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임명장을 받았다. 2009년 2월엔 원세훈 국정원장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인사 청문보고서가 채택됐지만 국회 본회의 보고를 거치지 않은 채 이 대통령이 임명했다.

이 대통령의 임명 강행으로 인사청문제도 자체가 '통과의례'로 전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대중들의 불신 상태에서 인사를 강행한 것은 인사청문회 기능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야당의 약점 들추기와 여당의 무조건적 감싸기 양태만 되풀이되면서 청문회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홍영식/이준혁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