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7일 청와대와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을 성토했다. 석달 보름 만에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다. 지난 23일 당 · 정 · 청 비공개 회동에서 안상수 대표 등 지도부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중도낙마와 관련,이명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인 지 나흘 만이다. 당 지도부 사과 후 나온 당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분위기 반전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홍준표 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구제역 사태,전 · 월세 대란 등 현안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책임론까지 제기됐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논의가 집중된 안건은 정부의 구제역 대응이었다. 당 인사들은 30여분 넘게 정부의 초동 대응 실패와 안이한 사태 인식 등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안 대표는 "정부가 초동 대응에 보다 심혈을 기울였다면 국가 비상사태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단 한 가지라도 서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각오로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백신접종을 초기에 생각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홍 최고위원은 "정권 무능으로까지 국민에게 비치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유 장관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원희룡 사무총장은 "정부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질타했다. 박성효 최고위원은 "당에서 청와대와 정부를 신랄하게 꾸짖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유 장관은 "매뉴얼대로 진행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었던 같다"고 해명했다고 배은희 당 대변인이 전했다.

당 참석자들은 이어 전 · 월세 대란과 국책사업 입지선정 문제 등에서도 정부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김 원내대표는 "각종 국책사업에 대해 정부가 단호하고도 빠른 결정을 하지 못해 여권 내부에서도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압박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입지를 조속히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 쪽에서도 당 쪽에 많은 주문을 냈다. 정부는 올해 7월 발효 예정인 한 · 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서둘러 처리해 줄 것과 한 · 미 FTA문제는 우선 당내 이견부터 해소해달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요구되는 56건의 법안을 선정했다며 원만한 처리를 당부했다.

다른 참석자는 "그간 갈등관계로 비쳐졌던 당 · 청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견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모임이 오랜만에 이뤄졌는데 현장 분위기는 결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일을 할수록 당 · 정 · 청이 공동 운명체라는 걸 느낀다"며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단합해 대응할 때 성공하고 분열하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