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 확산을 막는 과정에서 방역당국의 초기 대응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었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25일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구제역 초기 대응 과정에서 허점이 있었다"며 구제역 확산 원인과 전파 경로를 분석한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검역원은 구제역 확산 원인과 전파 경로를 심층 분석한 결과 정부가 구제역 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발표는 정부가 스스로 방역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 외에 수조원대의 피해를 감안하면 향후 관련자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검역원에 따르면 작년 11월23일 경북 안동의 돼지농가에서 처음으로 구제역 의심 신고를 했지만 방역 당국은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는 이유로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사태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농가의 돼지들은 의심신고 닷새 후인 11월28일 구제역으로 확진됐다.

정부는 이후 차단 방역에 나섰지만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구제역 바이러스가 이미 주위를 오염시킨 뒤였다. 검역원 관계자는 "이 양돈단지의 돼지에서 감염 항체가 검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발병 뒤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고 볼 수 있다"며 "농장을 통제하기 전에 이미 돼지에서 배출된 바이러스가 주변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방역당국이 신속히 대처했다면 1주일가량 빨리 차단 방역에 나설 수 있었을 것으로 검역원은 추정했다.

검역원은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는 하루 약 10억개의 바이러스를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안동의 양돈단지에서 사육되는 1만7000마리 가운데 5%만 구제역에 감염됐다고 가정해도 셀 수 없이 많은 바이러스가 배출됐을 것이라는 게 검역원의 분석이다.

검역원 관계자는 "한국은 외국과 달리 한곳에 많은 농가가 밀집돼 있고 지역마다 가축 종류가 유사한 특징이 있어 질병에 감염될 경우 피해가 더욱 크다"며 "경북 안동도 한우 집산지여서 양돈단지에서 배출된 구제역 바이러스가 주변 한우농가로 쉽게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동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의 반경 3㎞ 내 한우농가만 모두 121개로 소 1778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검역원은 "안동은 집성촌이 많아 인간 관계가 다른 곳보다 밀접하고 평소에도 모임이 많은 지역"이라며 "주민들의 잦은 접촉으로 바이러스가 급속히 전파됐다"고 분석했다. 또 안동의 한우농가는 대부분 동일한 사료를 사용하고 있어 차량 오염과 함께 차단방역 미흡 등이 겹치면서 여러 농가의 가축들이 한꺼번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했다.

강추위로 인한 차단 방역의 어려움도 구제역 확산에 한몫을 했다. 검역원 관계자는 "과거 구제역은 발생시기가 3~5월로 소독 등 차단 방역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겨울에 발생한 데다 강추위가 지속돼 소독 등에 어려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