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한테 가장 소중한 생활용품은 스마트폰이다. 몇 개월 전 아들이 "엄마도 젊은 사람들 트렌드 좀 따라가 보세요"라며 선물해준 것.고백하건데 처음엔 애물단지였다. 예전에 쓰던 휴대폰보다 크고 무거운데다 기능이 전혀 달라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통화하고 문자메시지 보낼 거면 괜히 비싼 휴대폰으로 바꿨다 싶던 찰나 이 녀석을 매우 요긴하게 쓸 때가 왔다.

호남지방에 20㎝ 넘는 폭설이 내린 날,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아침 일찍 전라도로 향하려는데 가족들이 만류했다. 차량으로 움직일 도로 사정이 아니란다. 기차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시도했으나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린 탓인지 여의치 않았다. 일단 남편과 나는 용산역으로 향했다. 버스나 자가용을 타려던 사람들이 대부분 기차를 이용하게 되니 좌석이 없을까 조바심이 났다.

"어머니,스마트폰 한번 보세요"

기차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초조하게 애를 태우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다운로드해준 몇 개 앱 중 철도청 것이 있으니 기차표를 예매하란다.

아…,이 복잡한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표를 산다?한시라도 빨리 기차역에 도착해 줄을 서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결혼식에 꼭 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갑자기 집중력이 높아지는 걸 느꼈다. 아들 설명대로 차분하게 철도청 앱에서 원하는 시간대를 조회하고 신용카드로 결제까지 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렇듯 어려운 고비를 함께하고 나니 이제 스마트폰은 필수품이 됐다. 처음엔 자식들에게 앱을 다운받아 달라고 부탁했다가 이제는 직접 하나씩 배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지인들과 점심을 먹을 때 마땅한 곳을 고민하다 증강현실 앱을 작동시켜 근처 음식점을 찾았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내 친구들은 이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젊은 사람들이 사는 스마트폰을 가진 것도 그렇지만,내가 단순히 통화만 하는 게 아니라 신기한 것을 구현해 주니 무척 놀란 모양이다.

남들보다 소비생활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내게도 급변하는 환경은 때로 두렵기까지 하다. 꼭 나에게 필요한 건지,어떤 게 좋은 건지,쓰기에 너무 복잡하지 않을지….시작도 하기 전에 노파심이 산을 이룬다. 스마트폰을 다정하게 매만지며 사용법을 열심히 배우다 보니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더욱 뿌듯한 것은 아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스스로 관련 기사도 읽어 보고 정보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요즘은 종종 내가 먼저 묻는다. "아들아,이 앱이 아주 쓸만하던데 너 아니?" 이번에는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김영신 한국소비자원장 ys_kim@k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