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 잡기'를 위해 원가 자료뿐만 아니라 불공정거래,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유통구조 왜곡 등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법 50조2항에는 '조사는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하며 다른 목적 등을 위해 조사권을 남용해선 안된다'고 돼 있으나 최근 공정위의 조사는 정부의 물가억제 목적에 따라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분야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사무처장 직할의 '물가불안 품목 감시 · 대응 대책반'은 정유 음식료 반찬류 식자재 주방용품 등 주요 생활필수품의 생산 제조 판매 등과 직 · 간접적으로 연계된 40여개 주요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협력사를 대상으로 전방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만간 조사 대상을 확대할 방침인 데다 조사 시기도 1회성이 아닌 연중 상시감시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이에 앞서 지난 3일 김동수 신임 위원장 취임 후 물가 감시 체제로 조직을 재편,시장감시국 카르텔감시국 소비자정책국 등을 사무처장 직할의 물가불안품목 감시 · 대응 대책반으로 재편했다.

공정위는 최근 조사 과정에서 원가분석표 등 물가 관련 자료 외에 △각 기업과 산하 대리점 · 협력사 간 계약조건 △주요 기업과 협력사 또는 대리점 간 대출강요 여부 △상호 계약 조건 및 계약 변경 요건 △주요 기업과 동종업체 간 거래 · 회의 등 관계 유형 △재판매가격 유지행위(특정가격 이하 판매금지) 강요 △부당 내부거래 행위 등 기업의 영업행위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제출받았다.

기업들은 "조사 목적과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영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도 몸을 사리고 있다. 정부의 '물가와의 전쟁'에서 주타깃으로 떠오른 모 정유사 관계자는 "공정위 공무원이 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조사 공문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애매한 문구들"이라며 "조사를 거부하기도 어려울 만큼 두루뭉술하다"고 말했다.

식품업체 관계자도 "과거 담합 조사 때는 조사 내용이 확실했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다 살피고 갔다"고 전했다. 공정위가 자의적 조사를 막기 위해 2009년 발표한 '미란다 원칙'이 조사 현장에선 사실상 '있으나,마나'라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미란다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대상 기업에 제시하는 공문에는 조사 목적과 범위,내용,과도한 조사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 여부 등이 포함된다"며 "기업들의 불만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또 가격 담합이 발생했을 때 담합 여부만을 조사하는 것으로는 근본적 치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상시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고강도 조사가 1년 내내 유지될지 미지수"라며 "공정위 조사가 느슨해지면 정부 압박에 눌려 있던 물가가 한꺼번에 튀어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용석/이정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