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4동.내방역에서 동쪽으로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면 작은 산이 가로막혀 길이 끊어진다. 숲이 우거진 곳에 에이프릴뮤직(대표 이광일 · 55)이 있다. 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오디오가 놓여있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20세기 테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프리츠 분덜리히의 독일 가곡도 들린다.

직원은 불과 11명.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외국의 저명한 음악잡지들이 이 회사 앰프를 최고 제품으로 꼽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저명한 오디오잡지 '스테레오 사운드'는 '2010년 그랑프리'를 수여했다. 크기는 작지만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와 원음을 최대한 살리는 생동감이 있다고 평했다. 영국 잡지 '하이파이 초이스'는 '만약 당신이 박스 1개로 된 앰프를 원한다면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 에이프릴뮤직의 오라(AURA)가 있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이 회사 제품은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으로 연간 100만달러가량 수출된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오라를 비롯해 스텔로(STELLO) 엑시머스(EXIMUS) 등 세 가지다. 가장 대중적인 오라는 대당 2000달러,스텔로는 3500달러,엑시머스는 8000~9000달러 선이다.

이 회사 앰프가 고급 제품 반열에 올라선 데는 이광일 대표의 집념이 서려있다. 경기고와 한양대 공대를 나온 이 대표는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술고시에 합격하고 전매청에서 10년 정도 일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 생활을 하긴 했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방송반 앰프를 함께 조립하고 연극반을 만드는 등 끼를 갖고 있었다. 잠시 인텔리전트빌딩 사업을 하다가 진로를 오디오로 바꿨다.

여기엔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학부모 회원으로 일하던 아내를 따라 아들의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음악시간에 아름다운 클래식이나 가곡을 배우는 게 아니라 대부분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방과 후엔 이어폰으로 국적불명의 시끄러운 춤곡을 듣는 게 음악의 전부였다. 감성교육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 청소년들에게 제대로된 음악을 들려줘야 하는데." 그 길로 국내 오디오를 조사했다. 마음에 드는 하이엔드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소득 수준만 올라간다고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직접 만들기로 했다.

목표는 단 한가지였다. '고급 오디오를 대중적인 가격에 공급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었다. 전자통신연구원 출신의 선배 엔지니어를 모셔오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은 뒤 점차 명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오라의 디자인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인 영국의 케네스 그란지 작품이다. 수없이 많은 해외 오디오잡지들이 이 회사 제품을 격찬하고 있다.

그는 10여년간 이 회사를 경영하느라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다. 고생끝에 서서히 내수시장도 열리고 있다. 그의 꿈은 한가지다. "회사를 반석위에 올려놓으면 순차적으로 학교에 1대씩 기증해 청소년들에게 깊이있는 음악,제대로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꿈이 실현될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