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튀니지'는 어디] 배고픈 北아프리카 시위 확산…가슴 졸이는 아랍권 장기집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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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재스민혁명' 불똥 이집트ㆍ알제리로 튀어 분신ㆍ시민봉기 이어져
석유ㆍ구리 등 '자원보고'…세계경제에 미칠 파장 주목
'재스민혁명' 불똥 이집트ㆍ알제리로 튀어 분신ㆍ시민봉기 이어져
석유ㆍ구리 등 '자원보고'…세계경제에 미칠 파장 주목
"튀니지의 재스민(jasmine)혁명은 아랍 독재국가의 변혁을 촉구하는 경고음이다. "(암레 무사 아랍리그 사무총장) "장기독재에 대한 염증과 배고픔이 절망적 저항으로 번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해지는 아프리카의 땅', 마그레브(Maghreb)에 봄이 오는가. 24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최근 권좌에서 축출된 직후 이집트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지역,마그레브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독재정권들은 민중봉기의 불똥이 튈까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불길은 타올랐다. 뇌관이 어디서 먼저 폭발할지가 문제"(레바논 데일리 스타)라는 관측도 나온다.
◆절망 · 분노…바이러스처럼 번지는 분신
벤 알리 대통령이 지난 16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이후에도 튀니지 도심에는 시민들의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일에도 수도 튀니스에는 시민 1000여명이 집권 여당이었던 입헌민주연합(RCD) 당사 앞에서 RCD의 해체를 요구했다. 현지 TAP통신에 따르면 위기감을 느낀 RCD는 이날 소속 장관들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를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과도 정부도 첫 국무회의를 열고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튀니지 혁명에 가장 긴장한 곳은 이웃 국가인 이집트와 알제리다. 이집트 최대 뉴스연합인 아람온라인은 이날 "튀니지 혁명에 자극받은 분신(焚身)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만 5건 발생하는 등 민심의 동요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집트는 지난해 5%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독재 속 성장'을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 절반이 극빈층으로 분류되는 등 빈부차가 극심하다는 점이 잠재적 뇌관이다.
알제리 상황도 악화일로다. 치솟는 식료품 가격과 실업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이미 500여명이 다치고 5명이 숨졌다. 엘우에드에서는 지난 18일 30대 실업자가 분신을 시도하는 등 극단적 저항이 그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인 엘 와탄은 "장기 독재에 대한 염증과 삶에 대한 절망이 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알제리의 전체 실업률은 25%에 이른다.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들어오는 유럽 관광객 수가 급감한 데다 '자유와 빵'을 찾아 유럽으로 떠난 이민자들의 고국 송금액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줄어든 탓이다. 아무르 함자위 베이루트 카네기 중동센터 연구원은 "튀니지의 민중 봉기가 이집트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아랍권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 철권통치…SNS 통한 시민 도전
'재스민혁명'의 확산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 아랍권 국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장기 집권이다. 이집트의 경우 올해 다시 대선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째 철권통치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넘게 집권해온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도 시민혁명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남부 수단과 분리독립을 위한 국민투표에 합의한 그는 "튀니지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야당 지도자를 체포하는 등 곧바로 이중성을 드러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리비아 역시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가 1969년 무혈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이후 42년간 정권을 장악해왔다. 카다피는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에게까지 권력 이양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져 정권 안팎의 불만이 팽배하다는 것이 서방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최근 리비아의 알 바이다 지역에서 수십명의 시민들이 반독재 구호를 외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나돌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한 왕국 요르단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AFP통신에 따르면 21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수천여명의 시위대가 총리 퇴진 및 내각 사퇴를 요구하며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아랍 정치평론가인 아무르 아사드는 "시민들은 이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힘을 빌려 빈곤 문제의 핵심을 냉철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자원의 보고'가 화약고 될까 촉각
마그레브 지역과 인근 아랍 국가들은 석유 금 구리 등 천연자원의 보고(寶庫)인 동시에 거대한 시장이다.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들이 이 지역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 유지에 심혈을 기울여온 배경이다. 재스민혁명이 주변으로 확산될지에 관심을 쏟아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긴급 통화를 가진 것은 이 같은 전략적 관계의 특성을 상징한다는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호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면서도 시민 소요 등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집트에서도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정부의 강경 진압이 이어질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지지할지,아랍 자원외교의 기반인 무바라크 대통령을 선택할지에 대해 벌써부터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잭슨 디엘 미국 국제정치 전문가는 워싱턴포스트 온라인판에 기고한 칼럼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아랍권 우방들과의 관계를 의식해 튀니지의 '신호'를 계속 외면한다면 이는 미국의 이중적 외교 전략을 극명히 드러내는 위험한 정치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