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휴대폰용 칩 업체인 미국의 퀄컴이 새해 초 큰 베팅을 했다. 31억달러를 투자해 무선랜 칩셋 개발업체인 아테로스를 인수하기로 한 것.1985년 설립된 퀄컴의 역대 최대 규모 인수 · 합병(M&A)이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은 미국에서 획득한 무선기술 분야 특허만 1만8000건에 이른다. 퀄컴의 기술을 라이선스한 통신기기업체가 전 세계 180여개에 달한다. 기술로 먹고 사는 전형적인 첨단기업이다. 그런 퀄컴이 아테로스에 거액을 베팅한 배경은 뭘까. 휴대폰용에서 태블릿PC용으로 반도체 공급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라는 게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대학 총장의 창업 스토리가 부각됐다. 존 헤네시 스탠퍼드대 총장이 주인공이다. 1998년 아테로스를 공동 창업한 헤네시 총장은 2004년 회사를 상장시켰으며 현재 3만2899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지난주 보도했다. 퀄컴이 인수 합의를 발표하기 직전 주가에 22% 프리미엄을 얹은 주당 45달러에 매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보유 지분가치가 148만달러로 불어났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헤네시 총장은 앞서 1984년 안식년 때도 칩디자인업체인 MIPS컴퓨터 시스템스를 공동 창업했고 이를 1989년 상장시킨 뒤 1992년 실리콘 그래픽스에 매각하면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창업자 출신의 헤네시 총장 이야기는 미국에서 학계가 실리콘밸리 기업 혁신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그가 2000년부터 총장을 맡고 있는 스탠퍼드대는 특허만으로 2009년에만 6510만달러(750억원)를 벌어들였다. 지난 40년간 이 대학은 특허 로열티로 11억달러를 벌었다. 지난해 미국 내 150개 대학은 4500개 이상의 특허를 통해 총 18억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한국은 어떨까. 서남표 KAIST 총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KAIST가 MIT보다 많은 특허를 신청하지만 MIT가 특허를 통해 큰 수입을 벌어들이는 데 비해 KAIST는 특허를 유지하는 정도의 수입만 내고 있다"며 "KAIST의 기술을 사용하는 유저들에게 라이선스를 주고,더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 '대학-산업 협력체제의 발전과 향후 과제'에서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서중해 KDI 연구위원은 "특허 출원 건수에서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에 견줄 만하지만 연구비 대비 기술료 수입은 미국 5.3%,영국 2.1%,캐나다 1.0%보다 낮은 0.8%"라며 "특허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사업화할 만한 특허 가치는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퀄컴의 베팅에서 산학협력 효율성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광진 국제부 차장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