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시작되는 시점에 장수가 자리를 비운 셈이라고 할까.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55 · 사진)의 갑작스런 병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잡스는 17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요양에 전념하기 위해 병가를 떠난다고 밝혔다. 애플 아이폰 · 아이패드를 겨냥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공세는 연초부터 거세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 잡스가 병가를 떠났다.

잡스는 어디가 아픈지,언제 돌아올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건강에 대한 우려로 애플 주가는 7% 곤두박질했다. 잡스 한 사람 없어도 티나지 않는 기업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애플은 '잡스 회사'라고 할 정도로 잡스 의존도가 높다. 폰 메이커,PC 메이커들이 일제히 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내놓고 애플을 공격하기 시작한 시점이라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잡스는 병가 중에도 CEO 자리를 유지하고 중요한 결정에는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병상결재'를 할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이 발언이 투자자들과 직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잡스는 2004년에는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2009년에는 간이식수술도 받았다. 수술한 부위에 문제가 생겼거나 또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애플은 장수 없이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

애플은 지난해 최고의 해를 보냈다. 4월에 아이패드를 발매해 연말까지 1000만대 이상 판매했다. 아이폰4도 초기의 '안테나게이트'에도 아랑곳없이 공급부족으로 허덕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애플은 지난해 시가총액과 매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세계 최고 테크놀로지(IT) 기업으로 도약했다. 스티브 잡스로서는 1997년 애플 복귀 후 13년 만에 대업을 이룬 셈이다.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1' 전시회는 애플을 겨냥한 총공세를 예고했다. 모토로라는 '에이트릭스 4G'라는 혁신적인 폰을,HTC는 '선더볼트'라는 고사양 폰을 선보였고,삼성은 다음 달 "깜짝 놀랄 갤럭시S 후속 폰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태블릿 공세도 거세다. 전시회에서 공개된 안드로이드 태블릿,윈도 태블릿 신제품만 80종이 넘는다.

애플은 경쟁사들의 총공세를 막기 위해 준비해왔다. 지난주에는 미국 1위 통신사인 버라이즌을 통해서도 아이폰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올봄에는 아이패드2를,여름에는 아이폰5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벌써부터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버라이즌 아이폰을 발표하는 자리에 잡스는 없었다. 아이패드2 조기발매 소문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잡스가 한두 달이나 반년 이내에 돌아오기만 해도 애플은 큰 차질없이 방어전을 치를 수 있다. 애플은 2009년 잡스가 6개월 병가를 떠났을 때도 잘 버텼다. 애플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50)이 버티고 있다. 잡스의 공백을 세 차례나 잘 메웠던 인물이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이 없는 사이 팀 쿡이 회사를 이끌 것이라며 무한한 신뢰를 표시했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디바이스 업계에서는 '졸면 죽는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슬림폰 '레이저'로 깃발 날렸던 모토로라가 후속 폰을 성공시키지 못해 벼랑 끝으로 몰리기도 했고,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노키아가 위기에 처해 CEO가 갈리기도 했다. 잡스가 한 달 만에 돌아올지,반 년 만에 돌아올지 모르지만 잡스의 공백은 애플한테는 위기이고 경쟁사들한테는 호기가 될 수 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