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임금피크제 폐지를 노사협상 테이블에 올리려는 것은 조직 생산성과 청년실업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임금 제도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구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연근무제와 함께 임금피크제는 연봉서열 위주의 임금체계를 개혁할 유용한 수단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사무직 생산성 저하

2005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시중은행들은 생산성 저하에 허덕이고 있다. 제조업체의 생산직 직원들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도 기존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는 반면 관리직에 있던 사람은 자리에서 떠나 '단순 사무직'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나 개인 모두에게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임금피크제를 택한 은행 직원들 상당수가 퇴직 전 영업점장 등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다. 이들이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채권 추심이나 민원상담 등의 업무를 맡게 되자 근로의욕을 아예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 전 고위직들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순간 계약직들이 주로 담당하는 단순 업무를 맡기 때문에 의욕을 잃고 주변 직원들의 사기마저 떨어뜨렸다"며 "시간만 대충 때우다가 퇴직하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A은행의 한 30대 직원은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는 사람들이 과거 지점장 때 하던 습관대로 후배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려 큰 혼선이 빚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소연했다.

◆고용 효과 놓고 정부도 이견

임금피크제가 존폐 기로에 선 데에는 '정년연장형'에 대한 부처 간 이견 탓도 크다. 고용노동부는 유형에 관계없이 임금피크제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년연장형에 대해서도 올해부터 최대 지원 기한을 6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등 지원을 확대키로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청년 실업을 악화시키는 정년연장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전력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정년 연장을 전제로 한 한전식 임금피크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기관장 등의 평가권을 갖고 있는 재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2004년 4곳,2005년 4곳,2006년 10곳,2007년 3곳,2008년 1곳,2009년 4곳이 도입했으나 작년 7월 한전 이후에는 도입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개선 방안 절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개선이 절실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그만큼 '여유있는 기업'으로 인식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부처 간 이견부터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한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임금피크제는 일정 자격만 갖추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근무 평점 등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사람도 일정 기간 후 평가를 통해 중도 탈락시키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욱진/이태훈/정재형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