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일 · 110일 · 295일 · 362일.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속 정당에서 탈당,임기까지 무소속으로 있던 날수다. 노태우 정부 이후 집권당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이 운영됐던 기간이 모두 927일에 달한다. 임기 말 여당이 반기를 들고 대통령이 탈당하는 사태를 보면 그 원인과 결과가 판박이다. 이명박 정부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사퇴를 둘러싼 갈등 구조를 보면 이전 정권 말기와 마찬가지로 여권의 원심력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탈당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여당 탈당은 항상 미래권력 창출을 둘러싼 갈등과 맞닿아 있다. 정권 초반 대통령의 힘이 강할 땐 숨죽이고 있다가 레임덕의 단초를 보이면 집권당의 반란이 촉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임기 말만 되면 터지는 대통령 주변의 각종 비리는 여당의 차기 집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인기 없는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1년 수서 택지 특혜 분양 사건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의 탈당 요구에 굴복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5년 뒤 이회창 후보로부터 탈당을 강요받았다. 이 후보 측은 당시 아들 비리와 한보 사태,경제 위기 등으로 인기가 떨어진 김 전 대통령과의 결별이 필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민심이 험악해지자 탈당카드를 썼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에 대해 여당이 반대하면서 탈당의 단초가 됐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 탈당은 '정부,내각,각료는 주권자인 국민에 대해 책임진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여당의 탈당 요구는 임기 후반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차기 주자나 집권당 쪽에서 대통령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지난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인기가 없었지만 공화당에서 탈당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에게 나가라고 하는 것은 정책실패를 공유하지 않고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잘못된 관행이고 책임 정치의 실종"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결과가 관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태를 계기로 당 · 청 간 엇박자를 냈지만 여권에선 대통령 탈당에 대해 극도로 언급을 삼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연초에 언급했듯이 임기 마지막 날까지 국정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 결과가 관건이란 분석이다. 강 교수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거나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질 경우 여당 내에서 탈당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정 후보자에게 반기를 든 데는 이러다간 올해 4 · 27 재 · 보선과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당을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