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빈혈ㆍ구토 부작용 적은 표적항암제, 건강보험 등재는 생명존엄ㆍ효율성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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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포커스
경제수준ㆍ위중도ㆍ삶의 질도 평가
보험재정 합리적 사용 기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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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재정 합리적 사용 기준 필요
전신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항암제를 대체하는 표적항암제가 암 치료에 점차 널리 사용되고 있다. 표적항암제는 특정 암을 일으키는 분자세포학적 경로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빈혈 탈모 구토 어지럼증 두통 같은 부작용이 현저하게 적다. 이 때문에 국내외 제약사들이 앞다둬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도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 정도를 제외하고는 '근치'시킨다고 말할만한 항암제가 극히 드물다. 더욱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자기부담금을 내면 웬만한 가정에서는 경제적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표적항암제 등이 생명을 수개월 연장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를 입증할 임상적 통계학적 근거를 내세워 환자와 보건당국을 설득하고 있다.
표적항암제에 대해 건강보험급여를 주는 것은 의약품 경제성 평가에 따른다. 돈을 쓴 만큼 치료효과가 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 점증적 비용 효과비(ICER ; 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이다. 주로 질보정수명(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의 개념을 이용해 건강하게 1년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비용이 얼마인지 판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1QALY 가치는 처한 입장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과 보건의료연구자는 1900만원을 1QALY로 잡았으나 정책결정자인 보건당국은 2600만원,제약업계는 1억2000만원,의사는 7400만원을 제시했다.
또 미국은 1QALY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4015만원,일본은 3491만원,영국은 2590만~3885만원,캐나다는 1351만~6748만원,호주는 2310만~4180만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1QALY는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과 근접해 국가경제 수준을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런 QALY를 감안해 건강보험급여 인정 여부를 결정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유동적 요소일 뿐이다. 유미영 심평원 약제등재부장은 "1인당 GDP,해당 질병의 위중도,사회적 질병 부담,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신약의 혁신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암 전문가로 구성된 암질환심의원회에서 임상적 필요성에 대한 자문을 받아 최종적으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표적항암제의 경제성 평가를 하고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제약사들은 일반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임상의학적 통계를 제시하거나,기존 1차 치료제보다 우수한 통증경감 등 삶의 질 개선 효과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성 평가를 해도 프랑스처럼 의무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하지 않는 나라도 있고 일본과 독일은 국내(선별등재)와 달리 네거티브로 운영하되 경제성 평가를 통해 보험급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사보험 체계여서 보험사와 피보험자의 계약내용에 따라 급여 여부가 달라진다.
1QALY는 건강하게 1년 더 사는 것을 의미하지만 암 환자는 특정 치료제의 투여로 수명이 연장돼도 사실상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긴 어렵다. 이것은 암이란 질환의 특성 탓이다. 정현철 연세암센터 원장은 "말기암 환자에게 수개월 또는 1년 넘게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된다"며 "기존 약제보다 기대여명을 작게는 수십 %,많게는 수배 늘린다면 의미있는 약제이며 적극적으로 보험급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수 국립암센터 원장은 "외국에서는 보험급여가 인정되는데 한국에서만 안되는 게 허다하다"며 "임의 비급여(건강보험급여는 이뤄지지 않지만 환자의 동의로 비보험 치료)에 대해 합법과 불법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따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타시그나(백혈병) 아바스틴(대장암) 얼비툭스(대장암) 등의 표적항암제가 비용 대비 효과 불분명 등의 이유로 등재가 안되고 있다.
표적항암제의 보험급여 등재 여부를 경제성으로만 따질 수 없다.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거나 질병의 위중도가 매우 심각하거나 다수의 환자가 강력하게 요구할 때는 비용 대비 효과가 미흡하더라도 일부 등재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고령화시대에 날로 암 환자는 증가 추세이고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어 '첨단'이라 이름 붙은 모든 표적항암제에 급여를 주는 것도 문제다. 고령화시대의 길목에서 생명존엄과 경제적 효율이란 상반되는 개념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