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41 · SK텔레콤)가 반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미국 시카고에서 출발한 최경주는 7일 아침 한국에 와 예정된 행사를 마친 후 밤 미국PGA투어 소니오픈(14~17일)이 열릴 하와이로 향했다. 12시간 남짓의 '깜짝 방문'이었다.

그런데도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동계훈련을 얼마나 했는지 얼굴색은 한창 시즌 때보다 더 까매진 모습이었다. 자신의 시즌 개막전을 1주일 앞두고 강행군을 벌인 것은 '좋은 일' 때문이다. 선수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메인 스폰서를 잡은 것.최경주는 이날 서울 을지로 SK T타워에서 '2013년까지 3년간 후원받으며 매년 SK텔레콤오픈에 출전한다'는 조건으로 SK텔레콤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2009년 말 나이키골프와 결별한 후 1년여 만의 희소식이다.

"지난 한 해 메인 스폰서 없이 보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간판 골퍼'인데….시즌 초에는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한 느낌이더라고요. 주위 사람들과 상의한 결과 모자 전면에 태극기를 달기로 했습니다. '한국 골프의 자존심인데 공백으로 둘 수 있느냐'는 지인들의 권유와 '메인 스폰서는 없지만 고국인 한국은 알려야겠다'는 제 생각이 일치한 결과였지요. 특히 마스터스에서 나흘 동안 타이거 우즈와 동반플레이를 하면서 태극기가 많이 노출됐습니다. 메인 스폰서 없는 설움을 어느 정도 날려버릴 수 있었지요. 그리고 제가 마침 '재단'을 갖고 있어 이를 알리기 위해 하반기엔 'KJ CHOI' 로고를 주로 달았습니다. "

그는 허리 부상에 시달렸던 1년여 전 나이키로부터 '계약 만료' 통보를 받고 자존심에 상처도 입었다. 선수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모자 전면을 비워둔 채 동계훈련을 열심히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빈 구석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010시즌 시작 전 두세 기업과 스폰서십에 대해 얘기가 오갔으나 합의가 안 됐다. 그렇다고 '미PGA투어 진출 1호 한국골퍼'가 싸구려로 계약할 수는 없었다. 인연이 있었던 신한금융그룹 SK텔레콤 슈페리어 등과 서브 스폰서 계약을 유지했지만 핵심인 메인 스폰서가 없는 채로 2010시즌을 맞이했던 것.이를 악문 결과였는지,초반 14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커트탈락하지 않았다. 우승은 못했으나 상금 220만달러를 벌며 성공적인 한 해를 마쳤다.

지난해 투어 상금 랭킹 33위,세계 랭킹 47위로 평년작 이상을 거둔 최경주는 그러나 지난달 초 동계훈련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스폰서 영입에 진전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티 지진피해 돕기와 부스러기 사랑나눔회 등에 '소리 없는' 기부를 해왔다. 액수를 물어보면 "안 세어 봐서 모른다"고 입을 다문다.

마흔을 넘긴 그는 짬짬이 케니 페리(51)와 비제이 싱(48)을 떠올린다. 투어 베테랑인 이들은 최경주에게 '히어로'다. 그들을 보면 자신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2008년 소니오픈에서 통산 7승을 거둔 후 우승 소식이 없는 최경주는 "올해 25개 대회 가운데 한두 번은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잡으면 된다. 넘버 에잇(8승)이 오면 9승,10승도 금세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3~5년을 제 경쟁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회 수로 보면 90개 이상인데,그 가운데 3승은 자신 있습니다. 그러면 투어 통산 10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 중 메이저 타이틀이 있으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

최경주는 다음 주 소니오픈부터 모자 정면에 'SK'를,상의 정면 우측 가슴에 'SK telecom' 로고를 붙이고 나선다. 올 시즌 첫 대회부터 '행복의 날개'를 단 최경주가 '불혹의 관록 샷'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