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칼' 공정거래위원회] 30년 역사에 16차례 바뀐 공정거래법…정권 입맛따라 '카멜레온'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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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근거법인 공정거래법은 시대 상황이나 정권 입맛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80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16차례나 개정됐을 만큼 굴곡이 심했다.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법이 바뀌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정거래법 개정은 통과의례처럼 반복됐다.
공정거래법의 필요성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63년 삼분(三粉)사건이 터졌을 때다. 시멘트 밀가루 설탕을 생산하는 대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판매가격을 인상한 사실이 밝혀져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당시 폭등세를 보였던 물가도 담합 규제 필요성에 대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당시 기업들의 카르텔 행위를 없애기 위해 공정거래법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기에 기업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쳐 입법 시도가 무산됐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80년 공정거래법이 도입됐다. 12 · 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으로 법 제정에 참여한 이규억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는 "권력의 정통성이 의문시되는 신군부에 의해 공정거래법이 통과된 것은 이 법의 운명을 예고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은 전두환 대통령을 거쳐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독점을 방지하고 시장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공정위의 역할이 달라졌다. 경쟁 촉진 이외에 '대기업 규제'와 '경제력 집중 억제'가 강화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대표적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폐지됐던 출총제는 3년 만에 부활했고 대기업 규제가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대기업들의 상호출자 공시의무를 강화하고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한도를 줄이는 등 기업 규제가 확대됐다. 기업들의 법 위반을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고 대기업집단의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등 대기업에 대한 감시의 역할이 강조됐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 노무현 정부 때 강화된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공정위 정책을 바꿨다. 대기업 규제를 완화했고 출총제를 폐지하는 등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회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등장하자 '동반성장'과 '상생'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고,올 들어서는 물가안정 쪽으로 선회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시장경쟁 질서 확립'이라는 정책 목표에 맞게 제도를 수정해 나가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법을 개정하거나 정책목표를 바꾸는 것은 공정위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