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이란 속이는 이치(詭道 · 궤도)이며,전쟁에서는 모략으로 공격하는 모공(謀攻)이 중요하고,성벽을 공격하는 공성(攻城)은 최하위다. " 이렇게 말한 손무(孫武)는 중국 최고의 병법가다. 그는 사마천에게 손자(孫子)란 존칭을 얻었다. 조조(曹操)의 《손자병법》 주석본이 나오면서 그의 병법은 수많은 이론에 인용되고 실전에 응용되면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경영철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손자병법》을 지었을 때 이미 그의 글은 널리 읽혀졌다. 그에게 과연 실제 지휘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오왕 합려(闔閭)에 의해 그가 장수로 임명된 과정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사마천의 《손자오기열전》에 의하면 오왕 합려가 궁녀 180명을 손무에게 내주면서 지휘해 보라고 했다. 군사가 아닌 궁녀를 가지고 시험해 본다는 것은 이론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어떻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지를 엿보고자 했던 것이다.

손무는 주저함도 없이 그들을 두 편으로 나누고 오나라 왕이 총애하는 후궁 두 명을 각 편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창을 들게 했다. 손무는 줄을 맞춰 늘어선 180명의 미녀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가슴,왼손,오른손을 알고 있는가. "

"알고 있습니다. "

"앞으로! 하면 가슴 쪽을 바라보고,좌로! 하면 왼손 쪽을 바라보며,우로! 하면 오른손 쪽을 바라보고,뒤로! 하면 등 뒤쪽을 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

그런데 실제로 훈련에 들어가자 궁녀들은 구령에 맞춰 움직여 주질 않았다. 서로 키득거리는가 하면 딴전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합려의 예상대로 상황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궁녀들 역시 이런 연출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깥에서 홀연히 나타난 객장(客將)을 골려주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손무는 군법으로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도끼 부월(斧鉞)을 움켜쥐고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다. "

그러고는 다시 여러 차례 군령을 되풀이해서 외우도록 했다. 궁녀들이 완전히 숙지한 것을 확인하고는 왼쪽으로 행진하도록 했지만 깔깔대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자 손무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군령이 이미 정확해졌는데도 규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다"라며 좌 · 우 대장의 목을 베려고 했다.

그녀들은 오왕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들이었다. 깜짝 놀란 오왕이 급히 사람을 내려보내 말했다. "과인은 이미 장군이 용병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소.과인은 이 두 후궁이 없으면 밥을 먹어도 단맛을 모르니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손무는 말했다. "저는 이미 왕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에는 왕명이라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고 말하고 두 여인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궁녀들은 손무가 명령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왕이 총애하는 궁녀 두 명은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점을 손무는 간파하고 있었다.

손무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왕이 내린 과제를 수행하고는 전령을 보내 이제 왕이 명령만 내리면 이 궁녀들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진에 뛰어들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애첩을 둘이나 잃어버린 왕은 슬픔에 젖어 "과인은 내려가 보고 싶지 않소"라며 물리쳤다.

훈련이라고 하지만 실전이라고 단정한 손무가 냉철한 현실주의자 오왕의 용서를 받고 장군에 임명된 것은 국가의 존망과 생사를 가름하는 전장에서는 일상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두 사람의 정치게임 틈바구니에서 목이 달아난 아리따운 궁녀들의 운명은 거론거리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