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뉴 판게아(New Pangaea · 새로운 초대륙) 시대'다. 나라마다 국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코앞에 다가온 다민족 · 다문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대륙경영 마인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것을 제대로 구현한 3인의 위대한 정복자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 1336~1405)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전문가인 이 책 《아미르 티무르》의 저자에 따르면 알렉산더나 칭기즈칸에 비해 티무르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너무나 인색했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장장 5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아니다. 여기서 이 책의 관전포인트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역사 속에서 과연 티무르는 어떤 존재인가,그리고 티무르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1402년 앙카라 전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중세 최강 오스만 제국과 중앙아시아에서 원정온 티무르 군대가 맞섰는데 의외로 오스만이 완패했다. 이 전투를 지켜보던 서유럽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티무르가 지켜준 건 오스만의 침략뿐만이 아니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기독교 문명도 함께 구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3년간의 실크로드 원정길에서 170일 연승을 기록한 티무르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탁월한 군사전략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티무르는 성과급제를 통해 병사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줬고 항상 최고의 음식을 제공했다. 싸움터에서 선두는 늘 티무르였다. 때로는 일대일 결투도 마다하지 않았다. 몽골계 후손인 티무르가 120여민족이 모여 사는 중앙아시아를 통합해 티무르 제국을 건설,800년마다 한 번씩 빛을 발한다는 별인 샤히브키란(sahibkiran)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이탈리아의 르네상스,유럽 국가들의 해양로 개척,인도의 무굴제국이 티무르와 연관성이 있다고 단언한다. 서구학계는 부인하지만 중세 암흑기의 유럽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근세라는 밝은 세상을 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티무르가 부활시킨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의 선진 문물이 유럽에 전파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화의 대항해는 티무르에 의해 유라시아 통상로가 막힌 명나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티무르가 죽은 후 오스만은 실크로드를 다시 폐쇄했다. 유럽국가들이 신항로 개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주변국에 짓눌려 빌빌거리던 영국의 도약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당시 최강인 스페인을 꺾고 대영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엘리자베스 1세가 티무르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대영제국이 추종한 티무르의 전략이 초강대국 미국에 여전히 실재한다는 점이다. 이런데도 티무르를 '희대의 살인마' 혹은 '파괴자'로만 폄하해 버릴 것인가. 그런 역사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을 타고 코란을 읽는 사회'를 만든 티무르의 리더십에 주목하면서 '양탄자 리더십'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고 제안한다. 색깔과 무늬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예술적인 양탄자를 만드는 기술은 다민족 · 다문화 국가에 전적으로 필요한 리더십이며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힘을 활용하는 '퓨전 리더십'과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주는 '체스 리더십'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21세기 옛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부활한 '자원 부국' 유라시아로 이목이 급속히 쏠리고 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예측한 대로 '하이퍼 분쟁',즉 자원전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티무르가 건설했던 유라시아가 600년 만에 깨어나고 있는데 우리의 신(新)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라고 저자는 묻는다. 그러면서 "세계 경영에 나선 최고경영자(CEO)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대륙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단순히 한 영웅의 평전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