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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말만 앞선 '구제역 방역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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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구제역 방역 시스템은 이웃 일본도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청사 3층 브리핑실에서 구제역과 관련해 담화문을 발표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이날 맹 장관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의 방역 시스템은 우수성이 이미 증명됐으며,이번에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예로 들었다. "지난 4~7월 사이 소와 돼지 34만마리를 살처분했던 일본이 지난 4월 5만5000마리만 살처분해 구제역을 막은 우리나라의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배워갈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두 장관의 '뛰어난 방역체계'에 대한 장담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 앞에 허언(虛言)이 돼 버렸다.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이후 강원도,경기도,충북 등 5개 시 · 도,60여곳으로 퍼졌다. 살처분 마리 수도 장관들이 비교대상으로 삼았던 일본보다 13만마리나 많은 47만마리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역대 최대 살처분 마리 수인 2002년 15만마리보다도 3배 많은 규모다.

    축산 농가와 생산자단체들은 이번 구제역 확산의 원인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초동 방역과 이동통제 실패 등을 지적했다. 안동시는 지난달 23일 역내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는데도 정밀검사를 의뢰하지 않고 방치,일부 의심소가 시중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전국적인 확산 양상에 정부가 예방백신 접종에 나섰지만 시기를 놓쳤고,급기야 28일 충북 충주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경기도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가축사육이 많은 충남지역도 구제역 위험에 처하게 됐다.

    구제역이 악화되면서 국내 축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농식품부가 내년부터 살처분 가축 보상금을 삭감하고 구제역 발생원인을 제공한 농가에 책임을 묻기로 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옳다는 지적이 많지만,발표시기가 왜 지금이냐는 볼멘소리도 없지 않다.

    29일은 공식적으로 구제역 확진이 이뤄진 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지금 다시 두 장관이 기자회견을 연다면 "우리의 방역시스템은 일본이 부러워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진석 사회부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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