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은 지금] "오늘도 공장 돌리긴 하지만"…불안에 짓눌린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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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폐쇄' 목소리
통행제한…원자재 반입 지연
바이어 잇따라 거래 끊어
南 관리자 근무 기피…北 근로자 일감 줄어 불만
통행제한…원자재 반입 지연
바이어 잇따라 거래 끊어
南 관리자 근무 기피…北 근로자 일감 줄어 불만
연평도 포격훈련이 실시된 지난 20일 오후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오오앤육육닷컴공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 가동했다. 포 사격이 한창이던 시간 남측 관리자들이 북측 근로자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줬고 생산량을 체크했다. 북측 근로자들은 바삐 움직였다. 이날 정부가 남측 인원의 통행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상당수 관리자들이 자리를 비웠지만 라인당 생산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북측 근로자들은 오히려 "관리자가 없어 일을 못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하지만 남측 관리자와 북측 근로자 모두 공장 안을 감싼 냉랭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개성공단의 운명이 어찌될지에 대한 우려였다. 이미 원부자재 반입이 지연되고 바이어들의 독촉이 이어지면서 우려는 극에 달한 상태다. 북측 근로자들은 "개성공단을 막으면 당신들(남측)만 손해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남측 관리자들은 "(북한이) 왜 자꾸 일을 저질러서…"라며 혼잣말만 내뱉었다.
◆흔들리는 남북 경협창구
개성공단을 둘러싼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공단 내부의 불안감도 전례 없이 커졌다. 천안함 폭침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긴장감이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입주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전에 없이 단호하게 '통행 제한' 카드를 꺼내들었고,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은 일부 업체는 바이어들이 거래를 끊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남측 관리자들은 근무를 기피하고,북측 근로자들은 일감이 줄어들면서 불만이 쌓이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 '금기어'나 다름없었던 '개성공단 철수'가 언급되는 등 개성공단의 운명이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개성공단은 사실상 남북한의 최대 경제협력 창구이자 유일한 대화채널 창구다. 지금은 남북 간 통지문 대부분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전달되는 상황이다. 그만큼 개성공단이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 때문에 북한이나 한국 모두 압박카드를 꺼내들 때도 개성공단 문제는 외면하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엔 남북한 모두에서 폐쇄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면 대북협력이 지속될 수 없다"며 폐쇄 가능성을 언급했고,김관진 국방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자국민 보호 측면에서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봉현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에서도 개성공단 관할 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폐쇄 주장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공단 폐쇄 가능성은 희박
남북한 모두 폐쇄에 따른 부담감은 상당하다. 개성공단은 현재 121개 기업이 공장을 돌리고 있으며 올 들어 10월 말까지 2억7000만달러어치를 생산했다. 관세청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개성공단 물품 반출입 규모는 13억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8억600만달러보다 62%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은 천안함 사건 이후 지난 5월 정부의 남북교역 중단 조치로 크게 감소했다. 지난달 현재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규모는 4억64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억4900만달러보다 30%가량 줄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입주기업은 물론 거래기업이 입을 타격이 만만치 않다. 입주기업들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납품업체도 5600개사에 달한다. 북한 역시 폐쇄에 따른 타격이 심각할 전망이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 수는 4만5000여명으로 매년 5000만달러가량의 임금을 수령한다. 근로자 가족까지 확대하면 20만여명에게 젖줄을 대고 있는 셈이다. 금강산 관광이 폐쇄된 시점에서 개성공단은 북한이 한국을 통해 벌어들이는 최대 외화수입원이다. 공단 폐쇄 후 이들 근로자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도 북한 당국으로서는 상당한 고민거리다.
개성공단이 위기를 맞으면서 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이달 들어 매출이 평균 수준 대비 30~40%씩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