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 훈련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그에 따른 엄청난 후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자위 차원에서 단호한 응징을 결의한 한국군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것이 그야말로 승산없는,그들 말대로 '무의미'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남한의 훈련에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했다면 북한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스스로 물리적인 붕괴를 가져오는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안보 무능론에도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

서해상의 긴장 고조로 많은 국민들이 불안에 빠졌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격 훈련 추이에 시시각각 민감해야 했고,사태 진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지스함과 구축함이 전진 배치되고 전투기가 공중 대기함으로써 한반도 서해가 분쟁지역으로 비쳐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유엔 안보리의 긴급 회동까지 있었지만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아직 상존한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북한의 도발을 일거에 분쇄할 수 있는 군사력과 철통 같은 방어태세의 확보는 두 말할 것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도발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찾아내 대응하는 일이다.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궁극적으로 남한과 미국을 향한 대화촉구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북한에 있어 2012년은 대단히 중요한 해다. 그들 말대로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이다. 정치와 군사 면에서 강성대국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북한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엄두조차 못낸다. 경제 강성대국은 자력으로는 열어갈 수 없는 형편이다. 남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얻어야만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은 북한 비핵화와 직결돼 있다. 그렇지만 핵은 북한에 체제 존립 기반 그 자체다. 체제가 완벽하게 보장되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핵을 보유한 채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체제를 보장 받으려 하고 있다. 남한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 핵과 경제협력의 이익을 동시에 챙기려 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핵문제 해결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대북 압박정책에 정면으로 부딪혀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국경을 넘은 두 여기자를 석방시키면서 빌 클린턴을 통해 대화의사를 전달하고,지난 8월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곰즈씨를 석방했다. 그러나 무성과였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한 · 미 간 찰떡 공조는 북한 운신의 폭을 더 크게 좁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벼랑 끝 전술에서 나온 산물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그 자체가 물리적 충돌로 문제해결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의 해결을 요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한다면 대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길을 미국이 먼저 갈 가능성이 크다.

내년 1월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 대화의 물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북 · 미 직접 대화를 위해 북한은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북한이 6 · 25 전쟁 당시 숨진 미군 병사 수백명의 유해를 발견했다"며 이들 유해의 미국 송환을 지원하겠다는 미끼까지 던지고 있다.

이미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는 북한이라 '실천' 여부를 지켜봐야 하지만 길이 열릴 가능성은 던져져 있다. 우리 정부도 연평도 사건 이후 변화될 한반도 국제정치 환경과 외교 지형 변화를 예측하고,걸맞은 대북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영윤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