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산다'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 목적으로 알짜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코스피지수가 37개월 만에 2000을 웃도는 등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제값 받고 팔수 있을 때 팔자는 속내도 엿보인다.

◆3년만에 토해낸 대한통운ㆍ로젠택배

현재 매물로 나온 기업 중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대한통운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23.95%를 비롯 총 25.6%의 대한통운 보유지분을 팔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17일에는 공시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통운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공식화했다.

시가로 5000억원 내외인 대한통운 지분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질 경우 1조원에 달할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통운이 올해 매출 2조원, 영업이익은 1000억원 이상의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인수 후보로 포스코 삼성 SK 롯데 STX 등 대기업 등이 거론되는 상황이어서 몸값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한통운은 초기 대규모 투자 뒤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며 "이는 소액주주보다 대주주에 더 매력적으로 보일수 있어 상식적인 경영권 프리미엄 이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진그룹도 로젠택배 보유지분 전량을 최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유진기업은 지난 16일 로젠택배 지분 약 71%를 588억원에 전량 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진그룹은 2007년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과 함께 로젠택배를 인수,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유진그룹은 여기에 더해 같은해 12월 2조원 규모의 하이마트 인수계약까지 체결했다.

잇단 M&A(인수·합병)로 승승장구 하는듯 했던 유진그룹은 그러나 불어난 차입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2008년 이후 줄곧 유동성 악화에 시달려 왔다. 결국 인수한 지 1년여 만에 유진투자증권을 매물로 내놨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지분 일부를 파는 선에서 정리했고, 유휴 부동산도 잇달아 처분했다.

유진그룹은 향후 하이마트를 상장시켜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하이마트 IPO(기업공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동부그룹, 재무구조 개선ㆍ지배구조 재편 동시 진행

재무구조 개선과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 중인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이 보유중인 동부한농 동부메탈 등의 지분 정리에 들어갔다. 동부하이텍은 지난 14일 동부한농 보유지분 78.32% 전량을 계열사인 동부CNI 동부인베스트먼트 등에 매각함으로써 3525억원을 마련,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7일에는 동부메탈 보유주식 1388만5040주(46.28%) 중 300만주(10%)를 주당 3만2700원, 총 981억원에 포스코에 매각하기로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김영준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초 1조3700억원에 달했던 동부하이텍의 순차입금이 3분기 말 1조700억원까지 줄었고, 올해 말에는 65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라며 "추가적인 자산 매각이 예정돼 있어 내년에는 순차입금이 3000억원 선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간 이자비용이 올해 1050억원에서 내년에는 400억원으로 감소,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다.

또 이달 중순에는 ㈜대성의 지주사인 대성지주가 산업용 가스 제조업체 그린에어를 235억원에, 쌍용양회공업은 쌍용자원개발을 360억원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다.

이밖에 다우기술키움증권 보유주식 중 일부인 70만주를 팔아 386억원을 현금화했고, 코스닥 기업 솔본은 경영상황 악화를 이유로 인터넷 포털 프리챌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M&A 컨설팅 기업 ACPC(얼라이언스 캐피탈 파트너스)의 남강욱 부사장은 "주가가 단기간 크게 오르자 중대형 M&A 딜이 잇달아 성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가격 상승으로 매도가능 가격이 형성되고 있고, 매수자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헤지(회피)를 위한 M&A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남 부사장은 "요즘과 같이 돈이 많이 풀려 있는 시기는 M&A에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를 참여시키기도 용이하다"면서 "특히 자산이 많고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에 러브콜이 많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