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고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현대자동차그룹은 "채권단 결정을 존중한다"고 환영한 반면 현대그룹은 "법과 규정을 무시한 초유의 사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8.3%와 관련,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중재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두 그룹 모두 "사전에 논의하거나 검토한 바 없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현대차그룹은 20일 저녁 채권단 발표가 나온 뒤 "결정을 존중하며 (이후 절차에서도) 채권단이 법과 입찰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해 주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동시에 "(향후 주주협의회 의결을 거쳐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위가 변경될 경우 원칙에 맞게 최선을 다해 인수 절차에 임하겠다"며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현대상선 지분 처리방안에 대해 "(채권단과) 사전에 조율한 바 없고 내부에서 논의하지도 않았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내부적으론 채권단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채권단이 이 같은 조건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변경을 위한 전제로 내세운 것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3% 처리와 관련해 채권단 측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대응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채권단은 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운영위원회에서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우선 논의한 뒤 주주협의회에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현대차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얻는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할지 여부는 내일부터 실무자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안건 상정 시점은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양해각서(MOU) 해지 결정에 "법과 규정을 무시한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이)전쟁을 원하면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채권단을 비난했다.

현대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채권단 결정은)대한민국 인수 · 합병(M&A)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불법적인 폭거이며,공정성과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장질서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당초 입찰 규정에 없던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했고,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MOU를 해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을 앞으로 협의하겠다고 결의한 데 대해서도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에 비해 4100억원이나 입찰금액이 적은 현대차에 현대건설의 인수자격을 넘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결의한 것은 명백한 업무상 배임죄와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강경 기조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와 관련해선 여운을 남겼다.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도와주겠다는 채권단의 중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긍정적 의사를 표명한다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처리방안에 대해 윈-윈하는 구조로 가능한 범위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두 그룹의 협조로)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수언/박동휘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