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봄,《오체 불만족(五體不滿足)》 열풍이 몰아쳤을 때 애써 모른 척했다. 갑자기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거부하는 버릇 탓도 있었지만,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가 20대 초반의 일본 대학생이란 점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책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 없이 저자의 신체적 특징만 강조되는 듯한 점도 거슬렸다.

언론에 비친 저자의 해맑은 얼굴과 감동적인 성장 과정에 놀라면서도 끝내 읽지 않았던 책을 펴든 건 그로부터 3년 반이나 지난 2002년 가을 《오체 불만족 완전판》이 나온 뒤였다. '오체 불만족,그 이후의 이야기'라는 홍보 문구 아래 실린 인용문에 이끌려서였다. '강물을 건너고 나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책은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없다시피 태어나고도 "그래서 뭐가 어떤데?"라며 당당하게 자란 저자도 저자요,그런 아들을 처음 본 순간 까무러치긴커녕 "어머 귀여워라" 했다는 어머니와,엉덩이로 걸어다녀야 하는 학생을 맡아 지도한 두 명의 초등학교 교사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싶었다.

자서전인 만큼 책은 시간을 따라간다. 앞에선 선천성 장애인인 저자가 일반 초 · 중 · 고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거쳐 와세다대 정치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삶이 그려지고,뒤에선 《오체 불만족》 출간으로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돼 겪은 갈등과 그 같은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과정이 다뤄진다.

무엇보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해 하지 않는 저자의 긍정적 사고와,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도망치지 않고 대드는 용기다. 장애아를 대하는 부모 · 교사의 태도와 후원도 놀랍지만 어려서부터 그가 보여주는 밝고 건강한 태도,불굴의 도전정신은 인간의 의지가 해낼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음을 일깨운다.

'뭉툭한 팔과 뺨 사이에 연필을 끼고 글씨를 써 보였다. 접시 가장자리에 스푼과 포크를 놓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음식을 먹는 시범도 보였다. 가위의 한쪽은 입에 물고 다른 한쪽은 팔로 눌러가며 얼굴을 움직여 종이도 잘라 보였다. 짧은 다리 때문에 L자로 돼 있는 몸을 움직이면서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

일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교육위원들 앞에서 보여준 시범에 대한 대목은 눈곱만한 장애물 앞에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스스로의 무능을 탓했던 가슴에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뿐이랴.친구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10㎝도 안 되는 팔다리로 줄넘기와 수영을 배우고,미식축구팀에 드는 모습은 그간의 내 삶을 송두리째 돌아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오체불만족》 출간으로 인한 유명세를 치른 다음 대학을 졸업하고 스포츠 리포터 겸 야구잡지 기고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책 말미에 털어놓은 얘기는 특별히 쥔 것도 없으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우리 모두에게 "그러지 말고 힘을 내보라"고 속삭인다. '오체불만족을 내고 나는 느닷없이 유명인사가 됐고,이젠 그 책이 내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는 오체불만족이란 뗏목을 버리고 싶다. 다른 배에 올라 또 다른 강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고 싶다. '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