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오체불만족의 뗏목은 버리고 싶다. 나는 이제 큰 바다로 나아갈테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언론에 비친 저자의 해맑은 얼굴과 감동적인 성장 과정에 놀라면서도 끝내 읽지 않았던 책을 펴든 건 그로부터 3년 반이나 지난 2002년 가을 《오체 불만족 완전판》이 나온 뒤였다. '오체 불만족,그 이후의 이야기'라는 홍보 문구 아래 실린 인용문에 이끌려서였다. '강물을 건너고 나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책은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없다시피 태어나고도 "그래서 뭐가 어떤데?"라며 당당하게 자란 저자도 저자요,그런 아들을 처음 본 순간 까무러치긴커녕 "어머 귀여워라" 했다는 어머니와,엉덩이로 걸어다녀야 하는 학생을 맡아 지도한 두 명의 초등학교 교사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싶었다.
자서전인 만큼 책은 시간을 따라간다. 앞에선 선천성 장애인인 저자가 일반 초 · 중 · 고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거쳐 와세다대 정치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삶이 그려지고,뒤에선 《오체 불만족》 출간으로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돼 겪은 갈등과 그 같은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과정이 다뤄진다.
무엇보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해 하지 않는 저자의 긍정적 사고와,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도망치지 않고 대드는 용기다. 장애아를 대하는 부모 · 교사의 태도와 후원도 놀랍지만 어려서부터 그가 보여주는 밝고 건강한 태도,불굴의 도전정신은 인간의 의지가 해낼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음을 일깨운다.
'뭉툭한 팔과 뺨 사이에 연필을 끼고 글씨를 써 보였다. 접시 가장자리에 스푼과 포크를 놓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음식을 먹는 시범도 보였다. 가위의 한쪽은 입에 물고 다른 한쪽은 팔로 눌러가며 얼굴을 움직여 종이도 잘라 보였다. 짧은 다리 때문에 L자로 돼 있는 몸을 움직이면서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
일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교육위원들 앞에서 보여준 시범에 대한 대목은 눈곱만한 장애물 앞에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스스로의 무능을 탓했던 가슴에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뿐이랴.친구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10㎝도 안 되는 팔다리로 줄넘기와 수영을 배우고,미식축구팀에 드는 모습은 그간의 내 삶을 송두리째 돌아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오체불만족》 출간으로 인한 유명세를 치른 다음 대학을 졸업하고 스포츠 리포터 겸 야구잡지 기고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책 말미에 털어놓은 얘기는 특별히 쥔 것도 없으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우리 모두에게 "그러지 말고 힘을 내보라"고 속삭인다. '오체불만족을 내고 나는 느닷없이 유명인사가 됐고,이젠 그 책이 내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는 오체불만족이란 뗏목을 버리고 싶다. 다른 배에 올라 또 다른 강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고 싶다. '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