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아무리 발전해도 단지 명령어를 수행하는 기계일 뿐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창조의 순간》의 저자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컴퓨터 프로그램들의 연산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에 없던,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을 영감이나 직관의 산물이라 보는 낭만주의적 의견과 기존의 것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의 조합적 창조,계산주의 심리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중 계산주의 심리학에 주목한다. 창조란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이 아니라 연산방식의 변화로 인한 결과물이며 그 힌트를 컴퓨터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컴퓨터가 생각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두뇌가 생각하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인지 · 연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더글러스 레나트가 개발한 프로그램인 유리스코(EURISKO)가 시뮬레이션 워게임(war game)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유리스코는 우스꽝스런 모습의 전함으로 참가자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첫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했고,이듬해 주최 측은 유리스코에 불리하도록 규칙까지 바꿨지만 또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대회에선 규칙이 이렇게 바뀌었다. '컴퓨터 참가 금지'.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