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문제에 비판적 견해를 견지해온 일부 천주교 사제들이 4대강 개발과 관련해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을 직설적으로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결과 순명(順命)을 필수 덕목으로 삼는 천주교 사제들이 교회 지도자를 공식적으로 비판 또는 반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지난 10일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 추기경이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주교단은 4대강 사업에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며 "위험이 보인다고 했으니 반대하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발하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사제단은 성명서에서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해 추기경에 대한 쓴소리는 삼가고 삼갔으나 최근의 언행이 생명과 평화라는 보편 가치에 위배되고 사도좌의 가르침마저 심각하게 거스르고 있다"며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는,혹은 꼭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고 반발했다.

사제단은 또 "정 추기경이 사견을 밝힌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했다"면서 정 추기경이 사도좌의 높은 가르침을 거스르고 2000년 교회 전통인 주교단의 합의정신과 단체성을 깨뜨렸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4대강 공사 때문에 빚어진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책임은 정 추기경께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사제단에 이어 원로 사제들도 정 추기경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사제단은 12일 "김병상 몬시뇰,함세웅 신부 등 전국 교구 원로 사제들이 1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정 추기경의 발언으로 4대강 사업에 관한 천주교회의 입장에 변화 또는 혼선이 생긴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데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제단은 매주 월요일 저녁 4대강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고 있어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한국 천주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국내 유일 추기경에 대한 사제단의 비판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