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한 지 11일째인 9일 경북 영덕에서도 구제역 양성판정이 내려져 경북 일대의 축산 양돈 농가들이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구제역은 안동을 기점으로 회오리치듯 번져 경북 북부 전역이 구제역권에 들어간 형국이다. 농가들은 "방역당국이 소 돼지 10만여마리를 살처분하고도 방역망이 뚫렸다"며 "획기적인 대책이 없으면 지역 축산업 기반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북도 구제역방역대책본부는 이날 "영덕 살처분 소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다"며 "이들 농가에서 기르는 한우 200여마리를 살처분했으며 양성 판정에 따라 반경 500m 이내 축산 농가의 우제류 가축을 모두 살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북의 구제역 발생지역은 모두 6개 시 · 군으로 늘어났고 발생건수는 31건으로 증가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갈수록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지역 구제역은 지난달 29일 안동시 와룡면 양돈단지에서 발견된 의심 돼지가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어 첫 발생 후 6일째인 지난 5일 경북 예천의 한우농가에서 두 번째 구제역이 확인됐다. 이틀 뒤인 7일엔 경북 영양군 청기면에서 세 번째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후 8일과 9일엔 이틀 연속 각각 경북 영주 · 봉화와 영덕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다.

구제역 발생 지역이 초기 발생지에서 갈수록 멀어지면서 동서남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당국 및 농가의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다. 두 번째 구제역 발생지인 예천은 안동에서 남서쪽으로 29㎞ 떨어진 지역이었다. 세 번째 발생지인 영양은 동쪽 28㎞ 거리다. 네 번째인 봉화는 북쪽으로 30㎞가량 떨어져 있으며 이날 구제역이 발생한 영덕은 초기 발생지로부터 남동쪽으로 61㎞나 떨어진 지역이다.

구제역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데는 가축 매매를 제대로 막지 못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봉화 · 영주의 구제역은 그 전까지 의심 증상을 보인 가축을 검사해 양성 판정한 것과 달리 확산 방지를 위해 살처분한 가축 시료의 검사결과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봉화의 한우농장은 구제역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달 25일 안동 위험지역 내 한우농가에서 소를 매입했고 영주 농장은 지난달 27일 안동의 구제역 발생농장에서 한우를 사온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도 사태 확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방역 당국은 지난달 26일 안동의 피해 농장주로부터 폐사 가축 신고를 받고 이틀이 지나서야 시료채취를 실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이 첫 발생한 지난달 29일 낮 12시까지 인근 돼지 2만여마리를 모두 살처분해 매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작업은 지난 2일에야 끝냈다.

살처분 외에 효율적인 대응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구제역 발생 농가는 물론 인근 소,돼지 등을 모조리 살처분해 매몰하고 있지만 확산을 막지 못했다. 해외로부터의 감염 차단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올해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포천과 인천 강화,경북 안동 3곳의 농장 관계자들은 외국을 다녀왔다는 역학조사 정황이 나와 있는 상태다. 한 방역 전문가는 "해외 여행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이에 맞춘 '차단 방역' 시스템이 허술한 게 사실"이라며 "보다 입체적인 예방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의 살처분이 증가하면서 지역 축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구제역 발생 초기 2만3000여마리였던 살처분 대상 가축은 이날까지 10만9000여마리로 4.7배나 늘었다. 당국은 지금까지 8만8000여마리의 살처분 및 매몰작업을 마쳤으나 영덕 한우농가의 양성 판정에 따라 대상 가축이 더욱 늘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북도의 한 · 육우는 올 3분기 현재 58만1300여마리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으며 돼지는 122만7900여마리로 세 번째다. 지역의 축산농민들은 "구제역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돼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며 "당국은 일이 터졌을 때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일규/서욱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