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예상을 깨고 강공을 택했다. 전날까지도 야당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 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강공은 의외였다. 실제 한나라당은 물리적 대치상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도 "신사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피력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박희태 국회의장과 정의화 부의장의 본회의장 진입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의장실과 부의장실을 먼저 점거했다.

야당 측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태도 변화가 "청와대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수차례에 걸쳐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 달라"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당부와 연결지어 보고 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던 2008년 이후 내리 3년 동안 예산안을 단독처리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1일까지 예산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사상 초유의 '준예산' 집행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던 기억을 갖고 있는 여권으로선 이번에 단독처리를 해서라도 행정부에 예산집행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한나라당이 강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4대강 예산은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어차피 처리가 지연되면 여론의 뭇매만 맞을 뿐 득될 게 없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강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그간 야당에 지나치게 끌려다녔다는 당내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김 원내대표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지난 10월25일 기업형슈퍼마켓(SSM)과 관련,유통법을 처리키로 했지만 민주당이 막판에 '유통법 · 상생법 동시 처리' 방침으로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법안 처리에 실패했었다. 이번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6일까지는 마치겠다고 여야 간 합의를 이뤘지만 박 원내대표가 입장을 바꾸면서 합의가 물거품이 됐다.

한 중진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믿어주는' 정치를 펼치는 것도 좋지만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며 "예산안까지 야당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전략적 판단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