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업계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자사브랜드 업체로 성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자금과 기술력을 갖춰도 원청업체의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자사브랜드를 개발한다는 소문만으로 주문이 끊기기 십상이다. 어렵게 자사브랜드를 선보여도 글로벌 신발 브랜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OEM 업체에서 자사브랜드 업체로 탈바꿈한 국내 신발업체가 있다. 부산 송정동에 위치한 트렉스타가 그 주인공.1988년 설립된 이 회사는 K2,살로몬 등에 트레킹화와 등산화를 OEM 방식으로 납품하다 1994년부터 자사브랜드에 도전장을 내기 시작했다. 그후 15년 만에 세계 아웃도어 신발 시장에서 16위에 올랐다. 국내에 잘 알려진 노스페이스가 10위에 랭크된 점을 볼 때 눈부신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트렉스타 신발은 미국,캐나다,노르웨이,핀란드,일본 등 24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제12회 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55 · 사진)는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자와 만나 "내년에는 10위권 안에 드는 것이 목표"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세계 아웃도어 시장에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860억원.자회사인 동호스포츠,트렉스타어페럴,트렉스타 중국법인까지 합치면 1720억원에 이른다. 권 대표는 "유럽 시장에 본격 상륙하는 내년에는 23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트렉스타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만명의 발 모양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 모양과 똑같이 만들어 착용감이 좋다.

권 대표는 "우리 제품은 발 모양대로 만들어 신발이 울퉁불퉁한 형태인데 해외에선 더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로 소비층이 두텁다"며 "특히 올해 출시된 트레킹화 '네스핏'은 해외 유명브랜드보다 30% 비싼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소개했다. 올초 트렉스타는 스페인의 명품백화점 '엘 코르테 잉글레스'에 입점했다.

자사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연착륙시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권 대표는 "몇 번씩 원청업체에 불려가기도 했다"며 "눈치가 보여 원청업체 일을 다 끝낸 컴컴한 밤이 돼서야 30여명의 개발자가 밤을 새우며 개발에 매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라인스케이트 전용 신발,스키화 등 특수한 신발을 개발하며 역량을 쌓았다"며 "노하우와 자금을 바탕으로 등산화,트레킹화 등 아웃도어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외면받기도 했다. 2000년 선보인 '디지털 슈'는 발 모양을 3D(3차원) 스캔해 2시간 만에 제작해 주는 맞춤형 신발이었다. 개발 소식을 알리자 해외 바이어들이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찾아왔지만 결국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권 대표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상업성이 부족해 오히려 250억원이나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개발인력은 줄이지 않았다. 전문 디자이너 30여명을 포함한 60여명의 인력이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1년에 1개 이상의 신제품을 선보이며 노하우를 쌓아갔다. 2006년 '미라지2',2008년 '코브라 530' 등이 소비자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OEM 생산을 점점 줄이고 자체브랜드 비율이 늘어났다. 현재 이 회사는 생산제품의 70%가 자사브랜드로 나가고 일부 품목만 OEM 생산을 하고 있다. 수출과 내수비중은 60 대 40.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