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황호준씨(39 · 사진)는 1년 넘게 한 작품과 씨름해왔다.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육성 프로그램인 '맘(MOM) 프로젝트'로 진행된 '아랑'에 올인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아랑'의 작곡가로 선정된 이후 작품 개발,내부 시연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40분 분량의 쇼케이스 형식으로 '아랑'을 처음 무대에 올렸다. 올해 6월에는 서울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1주년 공연,10월에는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공연에서 60분으로 공연 시간을 늘렸다. 그때마다 대본과 음악 등을 수정 · 보완했다.

오는 16~19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다시 이 작품을 올린다. 이번에는 90분으로 분량을 늘리고 중극장 규모에 맞게 완성된 공연으로는 첫선을 보인다.

"이 작품은 무대에 올릴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쓰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전체적인 이야기는 전 공연 때와 같지만 대본,음악 등이 바뀌고 등장인물도 새로 생겼죠.한국적인 요소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에요. 음악적으로 전통 가창이 들어가죠.서양 오페라 양식의 공연에서 전통 가창이 불리는 것은 처음일 겁니다. 우리 장단의 호흡 안에서 서양식 성악을 소화하려고 했죠."

황씨는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국악관현악단의 '검은평화',국립무용단의 '궁',TV드라마 '천둥소리' 등 국악과 양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작곡 · 편곡한 중견 음악가다. 소설가 황석영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오페라 작곡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우리말은 명사와 조사가 붙어 있고 음절 단위로 끊어지며 받침이 많아서 서양식 성악 가창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았다"며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문제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고 이를 푸는 것이 한국 작곡가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아랑'을 우리 창극이나 다른 전통공연 형태로 담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 창작 오페라 육성은 오페라 대중화를 위해 꼭 필요해요. '라 트라비아타''투란도트' 등 오리지널 오페라를 즐기는 애호가도 있지만 국내 오페라 관객층은 아직 협소하죠.우리 정서를 담은 오페라가 더 많은 관객을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기존의 오페라 마니아보다는 오페라를 어렵게 여기는 분들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

그는 오페라로 '할머니의 구라'를 부활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준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춘향과 심청 이야기는 음악적으로 활용할 소재가 많으며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오페라로 꼭 작업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아버지도 보러 온다고 하셨어요. 저희 부자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 간섭하지 않죠.결과물을 보고 격려하는 정도예요. 이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죠.'아랑'은 대공연장용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에요. 해외에도 알리고 싶습니다. "

'아랑'은 고대소설 《장화홍련전》의 뿌리로 알려진 '아랑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관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버려진 소녀 아랑의 진실을 밝히고 원혼을 달래는 과정을 다룬다. 연출은 이병훈,대본은 오은희씨가 맡고 소프라노 한예진,테너 전병호,바리톤 조병주씨 등이 출연한다. (02)586-5282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