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29일 대 북한 강경 담화문 발표로 남북관계 경색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확대될 조짐이다. 금융시장도 뉴스에 따라 하루 종일 출렁거렸다. 연평도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없다"던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불안감 커져

코스피지수는 이날 1895.54로 마감해 북한이 도발한 23일 1928.94보다 2%가량 하락했다. 원 · 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137원50전에서 1152원50전으로 상승(원화가치는 하락)했다.

29일엔 장중 한때 원 · 달러 환율이 1163원50전까지 뛰기도 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주가와 원화가치 하락 폭이 크지는 않지만 시장에는 향후 급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의 긴축에다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북한 리스크까지 터져나와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며 "국내 증시 하락 폭이 외국보다 작다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연평도 사태 이후 국내 주식을 2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향후 사태가 악화된다면 원 · 달러 환율이 1200원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외국인이 느끼는 불안감은 훨씬 더 심각하다. S&P는 이날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브라질 경제 및 신용 현황과 향후 전망'세미나를 취소했다.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여행주의 조치를 내렸으며 부득이하게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S&P의 설명이다.

◆국가 신용등급 이상없나

무디스는 이날 주간신용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의 포격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이 초래됐고 돌발위험(이벤트 리스크)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톰 번 무디스 부사장은 "산발적인 일방의 공격 내지 도발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A1'과 등급전망이 '안정적'이라는 신용 펀더멘털을 끌어내릴 요소는 되지 못해 기존 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을 유지한다"고 전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하지만 "북한의 최근 도발이 근본적으로 더 무분별한 입장에서 나온 것인지 판단 중"이라며 "이번 공격은 그러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 이어 나왔다는 점과 지난 3월 천안함이 침몰한 바로 그 지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번 부사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이 같은 도발은 북측이 정권교체로 불확실성이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일치한다"며 "북한의 핵확산 방지 정책 동참 거부와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인한 '핵보유국'으로서의 자리매김은 지정학적 긴장과 이벤트 리스크를 위험할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CDS 프리미엄 1주일째 고공행진

한국이 발행하는 해외 채권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과 외평채 가산금리도 아직 연평도 포격 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5년 만기 한국물의 CDS 프리미엄은 29일 111bp(1bp=0.01%포인트)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1bp 떨어졌지만 연평도 포격이 있기 전인 23일 오후 2시 85bp였던 것에 비하면 26bp 높다. CDS는 채권자가 채무자가 부채를 갚지 못할 것에 대비해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 상품으로 CDS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채무자의 부도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14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는 100bp로 전날보다 2bp 올랐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23일 오후 2시 84bp에서 연평도 포격 직후 94bp로 오른 이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과거 북한의 도발과 비교했을 때 CDS 프리미엄과 외평채 가산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분석했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상황정보실 연구원은 "가산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가도 1~2일 후면 도발 전 수준으로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1주일 가까이 여파가 미치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크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구조화될 것

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장은 "이번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그동안 남북대치가 최악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전제가 무너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과거와 달리 이번 사태는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이 짙다"며 "연평도 사태 후 일련의 남북 대치 상황이 악화되면서 비무장지대의 국지전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본질적으로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전쟁 개연성이 이전보다 높아져 잠재 리스크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종태/박준동/유승호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