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화 지키려면 전쟁 막을 힘 키워야
휴가 길에서 발길을 돌려 부대로 복귀하던 서정우 해병과 그의 후임 문광욱 해병은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 분통하다. 방탄모 외피가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불길 속에서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하는 또 다른 자랑스러운 해병의 모습에서 참군인상을 본다.
군에 가지 않으려고 생니를 뺐다는 연예인,정신분열증 · 우울증 · 대인기피증에 걸렸다는 탤런트,어깨를 탈골시킨 운동선수,손가락을 잘랐다는 사람 등 잔꾀를 부린 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잔꾀 부린 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말로만 국방의무를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열심히 뛰어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박수를 아낄 까닭이 없다. 법규정에 따라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병역특혜가 따르게 돼 있다. 일부 언론은 금메달을 딴 특정 선수의 병역특혜 사실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군 면제 받은 걸 축하한다는 글도 인터넷에 올랐다. 씁쓸하다. 군에 가지 않게 된 걸 축하한다고?
국가를 대표해서 뛴 선수들에게 보상이 따르는 건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그 보상이 왜 병역특혜인가. 병역은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국민의 의무다. 운동선수의 특성상 전성기에 군 입대로 운동을 중단하는 것은 고통일 수 있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군에서도 기량을 닦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든지,대표선수들이 선수생활을 끝낼 때까지 군대소집을 연기해준 뒤 군복무를 하게 하거나 군복무에 버금가는 활동을 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병역혜택 기간 중에 벌어들인 개인 수입 중 일부를 국방비로 헌납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 뉴저지주의 홈뉴스 트리뷴지는 연평도사태를 보도하면서 6 · 25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메이저리그 스타 테드 윌리엄스(보스턴 레드삭스)를 예로 들며 추신수 선수가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걸 꼬집었다. 윌리엄스는 '꿈의 타율'로 불리는 4할 고지에 마지막으로 오른 타자였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그는 24세 때 2차세계대전에 참전(1943~1945),메이저리그 복귀,1952년 33세 때 한국전쟁에 다시 참전,메이저리그 복귀,안타행진을 이어갔다. 두 번이나 참전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가 한 말은 "나는 야구선수 이전에 미국의 국민이다"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밥 펠러는 가정형편상 징집대상자도 아니었는데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던 1941년 12월7일 뉴스를 듣고 연봉협상하러 가던 발길을 돌려 자원입대,44개월 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조국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키다가 목숨마저 잃은 장병들,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값어치를 메달리스트와 비교할 수 있는가. 경기에서 지면 안타깝지만 국방에 구멍이 뚫리면 나라가 망한다. 국방 의무를 소홀히 다루는 생각부터 접어야 한다.
한 · 미 동맹,한 · 중 협력 등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안보태세 확립이 더 중요하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전쟁을 막을 힘이 없으면 평화를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모두 나서서 싸울 각오를 다지는 일처럼 시급한 게 없다.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고 전쟁을 막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할 때라는 것이다.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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