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시장 다변화는 한국의 오랜 과제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미국 시장에 의존했다. 한 예로 1992년 미국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선 중국이 수출의 주요 시장으로 떠올랐다. 올해 중국 수출 비중은 31%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신흥 수출시장을 적극 개척해 중국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한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도와 아세안은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도의 명목 GDP는 1조2426달러로 세계 12위(IMF에서 발표한 작년 말 순위)지만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한 GDP는 3조5286억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다. 아세안 6억명의 인구도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인도 최대 가전업체인 비디오콘의 김광로 부회장,라오스 최대 그룹을 일군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융기 수기아르토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초청해 좌담회를 마련한 이유다.


▼이경태 국제무역원장=오늘 이 자리는 인도,아세안 쪽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현지의 사업기회를 알려주는 데 유용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옛날에는 아세안이 세계의 공장 정도였다. 생산 측면에서 바라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의 시장이 돼가고 있다. 중국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새로운 노동 공급처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 시장은 중상위 계층인 '미들 마켓'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은 닛산자동차 등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이들을 공략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금 아세안은 농촌 인구들이 도시로 대거 유입되는 과정에 있다. 한국의 경험과 유사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상품이 잘 팔릴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김광로 비디오콘 부회장=인도도 마찬가지다. 인도 인구의 70%는 여전히 가난하다. 아직도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에 속해 있는 이들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한국 기업이 이 거대 시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단순히 무역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투자하고,실제 인도 기업이 되어야 한다.

▼수기아르토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 부회장=아세안에는 10개 국가,6억명의 인구가 있다. 인도네시아만해도 1인당 소득수준이 3000달러가량인데 2015년에는 5000달러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소득 수준이 계속 올라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집 안에 두는 소비재에 대한 구매욕이 커질 것이다. TV 등 가전제품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분야다. 한국 기업들이 아세안 시장,특히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 위한 큰 기회라고 말하는 이유다. 더 늦지 않게 아세안에 진출해야 한다.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을 활용해 아세안의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수출할 수도 있다. 아세안시장은 6억명의 시장으로 유럽연합(EU)보다도 크다. 지금으로부터 5년 후,10년 후를 보라.

▼이 원장=한국 기업의 장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수기아르토 부회장=예를 하나 들겠다. 'Korean Ginseng'이란 상품을 보면 이것만 영어고,제품 설명 등 나머지가 전부 한국어다. 모바일폰 패키지도 마찬가지다. 현지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인건비가 올라가면 당연히 제품 가격도 높아진다.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선 현지 투자처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 일본 기업들이 이런 점에서 앞서 있다. 브랜드 이미지와 관련해서도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 제품을 일본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소니나 샤프 제품과 달리 삼성 제품을 살 때 '고장나면 어떻게 하지?' 등의 걱정을 한다. 일본 기업들은 20여년간 이 같은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 회장=지역별로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과 다르게 태국,베트남,라오스만 하더라도 삼성,LG가 워낙 잘 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거의 사라졌다. 저가 이미지에서는 벗어났다는 얘기다. 문제는 아세안의 평범한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제품이 없다는 점이다. 미들 마켓을 겨냥한 아이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해외 투자를 할 때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하드 컬처'에 젖어 있었다. 매우 엄격한 품질 관리,생산성,연구 · 개발(R&D) 이런 것들에 치중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지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소프트 컬처'에 집중할 때다.

▼오 부회장=한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 커서 기성 세대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라.굉장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한국 연예인을 따라하는 젊은이들이 당장 경제 효과로는 계산하기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자산임이 분명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