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30분 인천 연평도 외항선착장.여객선 코리아익스프레스호가 부두에 닿자마자 주민들이 다급하게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 놓고 온 생필품과 귀중품들을 꺼내오기 위해서다. 여객선이 다시 인천으로 떠나는 시간은 오전 11시30분.당초 출발시간이 11시였지만 주민들의 요청으로 30분 늦췄다. 여객선은 이날 한 편밖에 없었고 기상 악화로 27일부터는 운항이 불투명하다.


◆또다시 포성…주민들 긴급 대피

주부 서현씨(31)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선착장 인근 주차장까지 50여m를 뛰어가 전날 섬을 빠져나오면서 세워둔 흰색 엑센트 차량에 몸을 실었다. 집까지 단숨에 내달려 옷가지와 분유 등을 챙겨 배로 돌아온 서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웃주민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간 김영희씨(59)는 섬에 남아있던 남편 김재현씨(73)를 끌고 나왔다. 남편과 함께 여객선을 탄 김씨는 "죽어도 내 고향,내 집에서 죽겠다고 고집부리는 걸 겨우 설득해 데려왔다"고 말했다. 28일 한 · 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주민들의 마지막 '엑소더스'였다. 이날 주민 17명이 빠져나가면서 섬에는 주민이 30명만 남았다.

오후에 북한 쪽에서 갑자기 20여발의 포격소리가 들리자 놀란 주민들이 대피소로 황급히 대피했다. 섬에 잔류한 한 주민은 "어떻게든 남아서 버텨보려고 했는데 불안해서 도저히 못살겠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텅빈 마을엔 거미줄만

마을은 이미 '슬럼화'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4일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다 보니 포탄을 피한 집들도 폐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중심 통로인 연평중앙길에 있는 빨간 지붕의 한 집은 대문 앞에 온통 거미줄이 생겨 손으로 헤치지 않고서는 들어가기 힘들었다. 인근의 한 가옥은 화장실로 연결된 관이 터져 오물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순찰을 도는 경찰과 해병대 트럭,복구팀을 빼면 거리에는 온통 굶주린 개들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자를 수백m씩 쫓아오는 개도 있었다. 대한적십자사의 무료급식도 아침부터 중단됐다.

이날 연평도로 돌아와 집에 남기로 한 박춘모씨(50)는 "귀중품을 가지러 왔다가 평생 산 집과 고향을 버릴 수가 없어 뭍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평 초교에 임시 주거 시설 설치

주민들이 떠났지만 복구 활동은 계속됐다. 26일에도 주택가 골목길에는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교체하는 한국전력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재해구호협회는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임시 주거 시설을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한 채당 5명씩 수용하는 가건물 15채를 27일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공사 관계자는 "막상 완성돼도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치안은 안정된 상태였다. 주인이 떠난 한 슈퍼마켓에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라면과 과자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극소수의 주민을 빼고 다들 섬을 나가 도둑질할 사람조차 없다"고 말했다.

◆대피소는 주인 잃은 개가 차지

연평도의 밤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25일 밤에는 불켜진 집을 찾기 힘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해안 도로에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들렸다. 주택가의 농협 현금자동인출기 코너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들어가보니 현금인출기는 꺼진 상태였다. 야간순찰 중이던 강삼복 인천지방경찰청 경위는 "간간이 불이 켜진 집도 대부분 비어있다"며 "피난 나오기 전에 불을 켜 놓고 온 주민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인근 대피소 앞에는 주민들이 먹고 버린 것으로 보이는 컵라면 용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전기가 끊긴 대피소 안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공포감이 밀려왔다. 휴대폰 불빛으로 비추자 추위를 피해 자고 있는 개가 눈에 띄었다. 연평중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는 포격 당시 급하게 갖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 본체들과 당직일지,초코파이 등이 나뒹굴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바닥에는 밤새 전등 대신 사용한 양초들이 굴러다녔다.

연평도=임도원/김일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