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프랑스 출판계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프랑스 출판 분야의 선두주자인 아셰트 리브르(Hachette Livre)가 프랑스 출판계에서 단독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고,4만~5만권에 이르는 절판본을 전자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구글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미국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도서들을 출판사와 저자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전자화하고 있다. 이에 격분한 라 마르티니에르 그룹은 구글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프랑스 출판조합(SNE)도 라 마르티니에르 그룹을 지지했고,아셰트 리브르 역시 SNE 회원으로서 다른 출판사들과 같은 편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아셰트 리브르가 구글과 손잡기로 한 것이다. 아르노 누리 아셰트 리브르 대표와 구글 책임자 댄 클랜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셰트 리브르의 절판본을 전자화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그라세 · 파야르 · 칼망 레비의 소설,아르망 콜랭과 뒤노의 대학 교재,라루스의 참고 도서 가운데 절판된 책들이 전자화 대상"이라고 밝혔다.

절판 도서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 합의에 큰 경제적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지만,프랑스 출판계 전체에 상당히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글에 맞서왔던 프랑스 출판계의 전반적인 태도와 달리 아셰트 리브르가 한 발자국 물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아르노 누리 대표는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기로 했다. 구글과의 소송은 끝까지 진행돼야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판 도서들을 구글과 함께 전자책으로 제작하는 데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 협의는 프랑스 도서의 판권을 관리하고 출판사가 절판 도서의 가격을 정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구글과의 제휴를 공식화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상황이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셰트그룹 출판사들이 전자화를 거부하는 경우 구글은 해당 출판사들의 모든 전자책을 파기해야 한다. 반면 협의에 따라 전자화를 받아들이는 경우,구글이 전자책 이용 통로를 독점적으로 관리하거나 구글의 출판사 업체인 '구글 에디션'을 통해 전자책을 판매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프랑스 출판사는 전자책 파일 사본을 받게 되며,이를 판매하거나 이에 대한 POD서비스(컴퓨터를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책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아셰트는 해당 전자책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도 열람할 수 있도록 유도할 전망이지만,사용자는 전자책의 전문이 아닌 일부만을 유료로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구글은 출판사와 서점의 적이 아니라고 강조한 아르노 누리 대표는 자회사인 아셰트 USA 또한 구글 에디션의 협력자가 되기로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테파니 메이어,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포함한 아셰트 USA의 신간 서적들이 구글 에디션을 통해 전자책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전자책 판매는 아셰트 USA 전체 수입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아셰트 리브르에서 시작해 프랑스와 유럽에,그리고 아셰트 USA에서 시작하여 북미 대륙에 걸쳐 전자책 시장에서 어떠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지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소진 < BC에이전시 프랑스어권 에이전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