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가 내년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인당 연 3만원어치의 학습준비물을 무상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의 개별 상황을 고려치 않고 일률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요즘 화두인 '보편적 복지'를 그릇되게 인식한 또 하나의 사례라 할 만하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교육청과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무상급식 실시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방송에서 마치 무상급식 전면 실시가 실현돼야 할 절대선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나왔던 무상급식의 부당함을 재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로 인식돼야 할 정책 사안이 학교교육 현장에 그릇된 양태로 투영되는 것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보편적 복지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즉 '보편적 필요'를 공급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복지적 측면 이외에 장기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도 보편적 복지는 중요하다. 문제는 정책 시행에서 '보편성(universality)'의 개념을 잘못 적용한다는 데 있다.

보편적 복지에 함의된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적용대상의 비예외성이고,다른 하나는 절차상 원리라는 측면이다. 여기서 적용대상의 비예외성은 적용대상의 예외나 적용범위의 정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특성을 가리킨다. 칸트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인간존엄성 사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적용대상의 비예외성을 나타내는 보편적 규칙을 산술적인 의미에서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보편성은 당위적 명제이지만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이 굶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 규칙을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해야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굶지 않고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여건상 자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최소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만 국가가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얼마 전 잠시 논란이 됐던 65세 이상 모든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재고돼야 한다.

절차상 원리 자체가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별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이를테면 절차를 규정하는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만 갖고 정의롭다거나 옳다고 판단할 수 없다. 절차를 규정하는 거의 모든 규정은 보편성을 담고 있지만,절차에 따라 집행되는 내용이 사회가 합의하는 규범에 부합될 때만 정의롭다거나 옳다고 판별할 수 있다. 따라서 절차상 원리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절대적인 선이거나 진리인 것처럼 속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부 방송에서 마치 '무상급식이 무산돼 안타깝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 것은 절차상의 원리만 가지고 정책의 진위나 옳고 그름을 예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가 왜곡되는 현장인 셈이다.

보편적 복지는 우선 모든 이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정책 원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둘째 따라서 최소 생계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보편적 복지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셋째 보편적 복지는 모든 이의 자생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절차적 특성을 띠기 때문에 상위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일단 도입된 복지정책을 쉽게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왜곡된 '보편적 복지'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미 서울시 교육청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무상급식 예산(1162억원)을 대폭 늘리는 대신 초 · 중 · 고 학생들의 통일 · 안보 교육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보편성 개념으로 본다면 '안보'가 더 중요하지만 이 부분은 줄고 '복지'로 예산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육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