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자에게 간언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칫 목숨마저 위태롭게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깨닫게 만드는 설득의 달인들이 있으니,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골계가(滑稽家)라고 한다.

순우곤은 본래 제나라 사람으로 몸집은 작았으나 변설에 뛰어났고 익살스러운 외교관이었다. 그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예리한 풍자와 비유를 통해 앞에서는 상대를 웃음짓게 만들고 뒤돌아서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골계가였다.

그가 제나라에 머물 때의 일이다. 마침 제나라 왕은 순우곤을 시켜 따오기를 초나라에 바치도록 했다. 순우곤이 도성문을 나서 길을 가다 실수로 따오기를 날려 보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 빈 새장만 들고 가서 초나라 왕을 뵙고 천연스레 이런 말을 했다.

"제나라 왕께서는 신에게 따오기를 바치도록 했습니다. 물가를 지나는데 따오기가 목말라 하는 것을 보고 새장에서 꺼냈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사람들이 우리 왕을 보고 새 때문에 선비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고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다른 따오기를 사서 가져올까 했습니다만,이것은 신의없는 행위로 우리 왕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고도 했습니다만 두 나라 사이에 사신의 왕래가 끊길까봐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잘못을 자백하고 머리를 두드려 왕께 벌을 받으려 합니다. "

초나라 왕은 "제나라에 이처럼 신의있는 선비가 있었다니…"라며 순우곤에게 상을 내렸다. 그 재물은 따오기를 바쳤을 경우보다 배나 됐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위기를 헤쳐 나감에 있어 여유로운 사고와 유머 감각이 사태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이다.

그가 위나라에 있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위왕(魏王)은 후궁들과 함께 주연이나 베풀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어느 날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왕이 계신 앞에서 술을 내려 주신다면 엎드려 마시기 때문에 한 말을 못 넘기고 바로 취합니다. 만일 어버이에게 귀한 손님이 있어 술을 대접하면서 때때로 끝잔을 받기도 하고,여러 차례 일어나 술잔을 들어 손님의 장수를 빌기라도 하면 두 말을 마시기 전에 취합니다. 만약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지난날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사사로운 생각이나 감정까지 터놓게 되어 대여섯 말을 마시면 취합니다. 만약 같은 고향 마을에 모여 남녀가 한데 섞여 앉아 서로에게 술을 돌리며 쌍육(雙六)과 투호(投壺) 놀이를 벌여 짝을 짓고,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아도 벌을 받지 않고,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금하는 일이 없으며,앞에 귀걸이가 떨어지고 뒤에 비녀가 어지럽게 흩어지는 경우라면 여덟 말쯤 마셔도 약간 취기가 돌 뿐입니다. 그러다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끝나면 술단지를 한군데로 모아 놓고 자리를 좁혀 남녀가 한 자리에 앉고,신발이 뒤섞이고,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마루 위의 불이 꺼집니다. 주인은 신만을 머물게 하고 다른 손님은 모두 돌려보냅니다. 이윽고 얇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는가 싶더니 은은한 향내가 퍼집니다. 이때 저의 마음은 몹시 즐거워 술을 한 섬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데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지나치면 안 되며,지나치면 반드시 쇠합니다. "(골계열전)

말하는 취지는 맨 마지막 구절이다. 더 이상 타락하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위왕은 깨달은 바 있어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순우곤에게 제후들 사이의 외교 업무를 맡겼다. 또 순우곤을 늘 곁에 두고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도록 했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