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신사들'이라는 시간 도둑들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몰래 숨어들어와 쓸데없는 시간을 절약해 시간저축은행에 저금하라고 꼬드긴다. 교묘한 꾐에 넘어간 사람들은 절약한 시간을 그 은행에 맡기는 데 동의하고 만다. 하지만 은행에 맡긴 시간은 잿빛 신사들이 다 써버렸고,마을 사람들은 계속 시간을 쪼개 저축하느라 생활은 빈곤해져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간 도둑들의 꾐에 넘어간 사람들에게선 잡담도,놀이도,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쓸데없는 것이 돼 잘려 나갔다. 원래 여유롭고 즐겁게 살면서 곤경에 빠진 친지나 이웃을 도와주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팍팍해졌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매 순간 숨통을 조여오는 일상을 살아가려면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삶을 찬찬히 음미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매사추세츠 월든 호반에 작은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요리와 청소도 직접 하면서 하루 4시간 이상 산책을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미국 버몬트주 산속의 18세기풍 농가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삼았던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대자연의 힘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음을 깨닫고 결핵마저 극복한 임제종의 노승 야마다 무몬 등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즐겼던 이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