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어카운트의 동일비율 집합주문이 사실상 허용되면서 자산운용사들이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펀드 투자로 고통받던 이른바 '앵그리 머니'들이 앞다퉈 환매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또다른 경쟁 상대인 증권사들의 랩 어카운트의 족쇄가 한꺼번에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들은 증권사 랩 어카운트가 1대 1 맞춤형 금융상품인데도 대량 계좌에 같은 비율의 주문을 내는 사실상 집합주문이 횡행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 왔다.

금융위원회도 랩 어카운트가 1대 1 맞춤형금융서비스라는 상품 도입취지 등을 감안해 불과 두 달 전 여러 계좌에 동일 비율의 주문을 금지하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일점 일획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일 수정된 최종 개선안은 이 같은 동일비율 집합주문이 허용되는 쪽으로 확정돼 발표됐다.

랩 어카운트의 최저가입 한도가 최저 1000만원까지 낮아지면서 투자 고객들이 급팽창한 증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랩 상품을 팔지 말라는 얘기라며 극렬하게 반발했고, 결국 금융당국은 이 같은 증권사의 의견을 이번 개선안에 전적으로 반영했다.

이제는 자산운용사들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불과 두 달전에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전면 금지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 동일비율 집합주문이 허용되면서 개선안이 180도로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동일비율 집합주문을 허용키로 하면서 몇 가지 단서를 달기는 했다. 동일한 투자자들, 즉 소득도 비슷하고 투자규모와 목적이 비슷한 유형별로만 집합주문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랩 어카운트 상품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의 유형이 최대 30-40개로 세분화돼 지금과 같이 일률적인 집합주문이 아닌 맞춤형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금융위의 주장이다.

또한 집합주문을 허용한다해도 투자자들이 특정 주식을 사거나 팔라고 랩 어카운트를 운용하는 증권사에 요청할 수 있는 만큼 펀드와의 차별성은 유지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운용사들은 이 같은 개선안이 '눈가리로 아웅하는 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고객별 유형화가 현실성이 있느냐 하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랩 어카운트 고객을 자산 규모와 투자규모 등으로 유형화 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투자성향이나 투자규모로 압축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랩 어카운트 투자자들의 경우 안정성을 강조하는 펀드보다 절대수익을 쫓는 성향이 강한 만큼 한 두개 유형으로 수렴하게 돼 펀드 운용과 다른 점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1차 개선안을 내놓았을 당시 증권사들로부터 "시장 현실을 제대로 알고나 이런 안을 내놓았는지 모르겠다"는 원색적 비난을 받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최종 개선안을 내놓은 현재, 이제는 자산운용사들의 같은 수위의 비난 강도를 견뎌야 하는 상황해 직면하게 됐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