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조 전 LG전자 회장(78세)이 최근 70억원의 사재를 기부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9일 다산연구소와 국학계 원로 등에 따르면 이헌조 LG전자 고문이 최근 후학양성에 써달라며 70억원을 재단법인 실시학사(實是學舍)에 기부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의 기부 사실을 그동안 숨겨왔으나 뜻하지 않게 한 명예교수의 기고글을 통해 알려졌다.

기초학문을 도외시하는 최근 대학과 기업의 인재양성 풍토를 비판하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글이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실렸는데 그 내용 중에 이 전 회장의 기부사실이 언급된 것.

송 교수는 다산포럼에서 "한 개인이 70억이라는 거액을 희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기업경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 학술단체에 희사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며 "최근 기업과 대학이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만을 찾고 양성하면서 우리의 기초 순수학문이 피폐해지고 있는 와중에 이 전 회장과 같은 분이 있어 존경스럽다"며 그를 소개했다.

실시학사는 국학계 원로인 이우성 선생(85)이 1990년 성균관대를 퇴임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서당이다. 이 전 회장이 평생 모은 사재를 이곳에 기부하면서 실시학사는 지난 10월 한국 실학을 연구하는 재단으로 변신했다.

대기업이나 독지가가 학술단체에 사재를 기부해 재단을 세우면 이사장 같은 ‘자리’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이 전 회장은 1년짜리 ‘평이사’에만 이름을 올렸고, '한국 실학 연구'에 출연금을 써달라는 것 외에 기금 운용 등 다른 조건은 일절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지난 1957년 락희화학공업에 입사해 1989년 LG전자로 옮겼으며 지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LG전자 대표를 지냈다. 1989년 사장, 1992년 부회장, 1995년 회장을 지냈고 LG인화원장을 거쳐 1998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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